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예상보다 큰 차이로 패배했다. 여론조사는 초박빙으로 나와 미국 대선 236년 역사에서 첫 여성 대통령 실현 가능성을 키웠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게 승리한 데 이어 여성 대통령 등장을 두 번 막았다. 힐러리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이었고, 엄청 출세한 백인 엘리트였던 점을 고려하면 ‘흑인+여성’이었던 해리스는 이중의 핸디캡 속에서 뛴 격이다. 고물가 등 경제적 어려움에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심판 분위기가 겹쳤는데도 자신만의 장점을 부각하지 못한 탓도 크지만 여성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유리천장을 깨기 어려웠던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던 2008년에 연수한 학교가 워싱턴DC에 있어 미국 대선을 한가운데서 보는 행운을 얻었다. 유대계 백인인 대학원 수업 조교에게 ‘어떻게 힐러리가 신인 같은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를 뺏길 수가 있나’고 물었더니, 예상 못 한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놀랐는데, “미국에선 여성이 흑인보다 대통령이 되기 더 어렵다”였다. 좀 과장해서 들으면 흑인은 그래도 ‘검은 사람’이지만,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그 무엇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레이디 퍼스트’ 문화 등은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 흑인 참정권은 1870년 수정헌법 제15조가 만들어지면서 도입됐다. 남북전쟁 직후로, 조선이 반상(班常)을 구별하고 노비를 둔 신분사회이던 때였다. 여성 투표권은 그로부터 50년이나 더 지난 1920년 여성보통선거에 관한 법이 통과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연방 선거에만 허용됐고, 주 선거는 주별로 법이 통과돼야 해 오랜 세월이 걸렸다. 미시시피주에서 1984년에 여성보통선거법을 인정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번 대선 때 민주당 진영에서 ‘남편 모르게 해리스에게 투표하자. 기표소 안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캠페인을 진행한 것도 충격이었다. 백인 여성 표를 노린 선거 운동 전략인데, 달리 생각하면 아내나 딸의 투표에 남편이나 아버지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제 민주주의 종주국이자 선진국으로 알던 미국의 뒷모습이라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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