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손해보험의 3년차 세터 박현빈은 묵묵히 자신을 찾아올 기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KB손해보험의 3년차 세터 박현빈은 묵묵히 자신을 찾아올 기회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자신의 올 시즌 마지막 선발 출전일 수도 있던 경기에서 극적으로 희망을 확인했다.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의 3년차 세터 박현빈(20)의 이야기다.

KB손해보험은 지난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도드람 2024∼2025 V리그 남자부 1라운드에서 세트 스코어 2-3 패배를 당했다. 첫 세트를 내준 KB손해보험은 2, 3세트를 가져오며 승리를 눈앞에 뒀다가 아쉽게 재역전패했다. 비록 새 시즌 개막 후 5연패가 이어졌으나 V리그 남자부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받는 대한항공을 상대로 얻은 시즌 첫 승점이라는 점에서 자신감을 얻기에 충분한 결과다.

대한항공의 전력 누수가 상당한 가운데 얻은 승점이지만 KB손해보험 역시 구멍이 컸다. 아시아쿼터로 뽑은 아웃사이드 히터 맥스 스테이플즈(호주)가 종아리 부상으로 개막 후 한 경기도 치르지 못했고, 경험 많은 미들 블로커 박상하도 출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시즌 초반 주전 세터 역할을 하던 이현승이 손목을 다친 것이 KB손해보험에겐 가장 뼈아픈 이탈이었다.

국가대표 세터 황택의가 7일 국군체육부대를 전역해 뒤늦게 선수단에 합류한 KB손해보험은 이번 시즌 초반 5경기를 나이 어린 세터 2명으로만 경기를 치렀다. 이런 가운데 이현승마저 손목을 다쳐 KB손해보험은 당장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세터가 3년차 박현빈 뿐이었다.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박현빈이 희망을 쐈다.

경험 부족이 우려됐던 박현빈은 홀로 5세트를 활약하며 기대 이상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시즌 첫 승점을 이끌었다. 첫 세트를 내줬으나 이내 외국인 선수 비예나와 나경복을 중심으로 착실하게 점수를 쌓았다. 박현빈 본인도 블로킹 4개를 잡는 등 여러 면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남겼다.

박현빈과 비예나가 지난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경기 중 하이파이브를 하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 한국배구연맹 제공
박현빈과 비예나가 지난 5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 경기 중 하이파이브를 하며 각오를 다지는 모습. 한국배구연맹 제공


박현빈은 2022∼2023시즌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KB손해보험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황택의와 황승빈(현대캐피탈)이라는 확고한 주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첫 시즌 5경기 14세트, 2023∼2024시즌 2경기 2세트 출전에 그쳤다. 이번 시즌은 황택의도 황승빈도 없으나 트레이드로 합류한 이현승에게 초반 기회를 내주고 2경기 5세트 출전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시즌 첫 선발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마틴 블랑코 감독대행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박현빈에게 "마지막 선발 경기가 아니라 레전드 경기가 될 수 있도록 하자"고 격려했다. 경기 중에도 박현빈을 따로 불러 "잘하고 있다"는 말로 계속 응원했다. 블랑코 감독대행은 풀 세트 패배 후에도 "박현빈이 상당히 어려운 팀을 상대로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시즌 우승팀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박현빈이 자랑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황택의가 합류하면서 박현빈의 역할은 다시 백업 선수로 돌아갔다. 이현승마저 부상에서 회복하면 좀처럼 경기 출전이 힘든 3번 세터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박현빈은 앞선 경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때를 기다린다는 계획이다.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의 3번 세터 박현빈(오른쪽)은 이번 시즌 자신의 첫 번째 선발 출전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시즌 첫 승점을 가져왔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V리그 남자부 KB손해보험의 3번 세터 박현빈(오른쪽)은 이번 시즌 자신의 첫 번째 선발 출전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경기 운영을 선보이며 시즌 첫 승점을 가져왔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박현빈은 문화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다들 택의 형이 전역하기만 기다린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택의 형 혼자 시즌의 많은 경기를 다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생각지 못한 부상이 있을 수도 있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열심히 운동해서 택의 형이 가진 짐을 나누겠다"고 말했다.

프로 세 번째 시즌을 맞아 단 한 번도 주전의 입지를 얻지 못한 박현빈이지만 당찬 자신감의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자존심이 있다. 다들 학교 다닐 때 잘했으니까 프로까지 올 수 있었다"며 "나도 학교 다닐 때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프로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 충분히 주전 경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백업 선수의 역할만 하란 법은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기존의 입단 첫해 선수만을 대상으로 하던 신인상을 대신해 입단 3년차 선수까지 대상을 확대한 영플레이어상을 도입했다. 덕분에 박현빈도 이 상의 주인공을 노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박현빈은 "누구나 수상 욕심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나보다 우리 팀이 더 빛나야 한다. 개인적인 것은 그 다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 = 오해원 기자
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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