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정책 충돌·후퇴 조율 없어 부처 이기주의·복지부동 뚜렷 근거도 없는 경제 낙관론 위험
지지도 최악 속 국정 동요 불안 동력 없는 4대 개혁 공허할 뿐 후반기 성패 신뢰 회복에 달려
윤석열 정부의 임기 후반기가 출발부터 안팎으로 첩첩산중이다. 당장 내년 1월 20일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 정립이 발등의 불이다. 한미동맹을 전면 재정비해야 할 판이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최악인 상황이다. 관심을 끌었던 지난 7일 사과 회견도 국민의 의구심을 완전히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런 와중에 정부 내부의 균열과 불협화음이 심상치 않다. 주택 대출·정책 대출 혼선은 가관이다. 1라운드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2라운드는 국토교통부-금융위가 충돌했다. 특히, 최근 디딤돌 대출(전세)은 전면 축소-유예-지방은 허용으로 갈팡질팡했다. 금감원의 좌충우돌식 관치금융 압박, 국토부의 독단 행보가 문제의 발단이다. 충돌을 미봉했을 뿐, 규제·지원의 경계가 모호해 불씨는 여전하다. 기업 규제를 생명줄로 여기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막무가내 행태도 황당하다. 이동통신사들이 단통법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을 지킨 것을 담합이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충돌하고, 플랫폼 규제를 놓고는 위원장 대행체제인 방송통신위원회와 힘겨루기로 불화를 키운다.
정책 후퇴·파행도 잇따른다. 환경부는 댐 확대 계획의 핵심인 양구 수입천댐을 주민 반발을 이유로 취소했다. 용인 반도체 용수를 충당할 댐을 발표 3개월 만에 포기한 것이다. 국가적 프로젝트마다 반발에 직면하는 게 예사다. 원전 추가 건설, 이미 지체된 송·배전망 건설, 착공까지 5년은 걸릴 제주 제2 공항 등이 모두 그렇다. 이런 식이면 국책사업의 결말은 뻔하다.
윤 정부가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겠다며 출범시킨 우주항공청의 파행도 어이없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도하는 기존 차세대발사체엔 2032년까지 2조132억 원을 투입하면서 ‘게임 체인저’라는 스페이스X 같은 재사용발사체 지원은 내년부터 3년간 총 400억 원에 불과하다. 내년은 고작 연 50억 원이다. 참여 기업 네 곳은 총 78억 원을 내야 한다. 지난달 공청회에서 우주·항공업체들은 “봉급도 안 된다”며 반발했다. 윤 대통령의 공언은 속 빈 강정이 됐다. 여기에 항우연과 한화 간 지식재산권 싸움은 중재도 못 한다. 우주 산업을 카르텔이 막고 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최악인 속에서 부처들의 복지부동에다, 일단 제 밥그릇부터 챙기려는 이기주의가 확산하는 중이다. 부처 수장들의 동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전·사후 조율도 작동하지 않는다. 부처·정책 충돌이 한두 번도 아닌데, 경제사령탑인 기획재정부도, 국정을 총괄하는 국무총리실도, 심지어 대통령실도 좀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 경고조차 없다. 국정 시스템의 마비나 다름없다. 항간에는 용산 대통령실을 지배하는 해괴한 기류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만연한 실정이다.
수출 둔화로 2·3분기 연속 성장 쇼크인데도 정부가 근거 없는 경제 낙관론에 빠져 있는 것도 위태롭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국회 국감 때 올 예상 성장률을 2.4%에서 2.2∼2.3%로 낮췄지만, 기재부는 무대응이다. 잠재성장률 2%를 넘을 것에 만족하는 모양이지만, 내년엔 2%도 안 될 것이란 걱정이 지배적이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고, 앞으로 강달러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데도 별 대응이 안 보인다. 그러면서 역대 최고 고용률·최저 실업률, 역대 최대 수출 등을 나열하며 전반기 성과를 자화자찬이나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개혁이 민생을 살린다며 연말까지 성과를 내라고 부처들을 닦달한다. 그러나 4대 개혁이든, 4+1 개혁이든 민의가 뒷받침 안 되면 공허할 뿐이다. 벌써 임기 후반기 국정의 동력·방향 상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 내분·정책 충돌이 불안감을 더 키운다. 이대로는 어떤 정부 정책에도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어긋나는 일들이 눈앞에서 너무 많이 벌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김건희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말이 들린다. 획기적인 반전으로 일신해야 한다. 공직자가 공적 시스템 밖에서 신임을 구하는 행태는 당장 근절돼야 한다. 호가호위하는 내부 세력부터 걷어내야 한다. 후반기 임기는 신뢰 회복에 달렸다. 이젠 결단을 내리고 실천할 때다. 더 실기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