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Kushnameh)는 해외 한국 관련 기록이 어떻게 ‘문화적 상상력’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와 신화가 혼재된 서사시의 배경은 655년에서 680년 사이. 651년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제국에 멸망한 뒤 마지막 왕자가 중국 당나라로 피신했다 신라에 와서 활동한 이야기다. 왕자는 신라 화랑에 신무기 기술 등을 전해주고 신라 공주와 결혼해 경주에서 살다 페르시아로 떠난다. 신라의 기후, 지리, 궁중의례, 음식 등 신라에 대한 내용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란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 11세기에 기록된 작품은 2000년에야 국내에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어 2009년 영국국립도서관에서 필사본이 발견됐고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국·이란·영국 학자팀이 꾸려져 15년간 해독·번역 및 각주 작업을 벌여 왔다. 그 결과, 드디어 내년 초 주석 달린 완역본이 국내 처음 출간된다. 영문판은 2022년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학자들이 작업을 벌이는 사이 유라시아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대서사,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며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부터 소설, 동화, 만화, 무용, 연극, 애니메니션 등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국립중앙도서관 주최로 열린 국제세미나 ‘해외 한국 관련 근현대 자료 수집의 현재와 미래’에서 이희수 교수는 쿠쉬나메 작업 진척 상황을 전하며 “한국 역사와 문화가 고대 이래 바깥세상에 완전히 열려 있었고 다른 생각과 가치를 적극 수용하는 전통을 가졌음을 확인해 준다”고 말했다. 쿠쉬나메처럼 기록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과 연계돼 이어지기를 고대한다고도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04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한국 관련 문서를 수집한 이래 올해 해외 한국 자료 수집 20년을 맞았다. 그동안 러시아, 독립국가연합, 헝가리, 튀르키예 자료를 발굴·수집했고 올해는 체코 자료를 찾는다. 자료는 디지털화돼 누구나 원문을 보고 활용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돼 일반에 공개되면서 소설·드라마가 쏟아졌듯 역사와 문화는 기록과 자료 위에 이뤄진다. 해외 한국 자료는 역사와 문화의 빈틈을 메우고, 다른 시선에서 우리를 보게 한다. 거기에 또 새로운 상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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