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제주 구좌읍 다랑쉬오름 트레킹 참여자들이 해먹에 누워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지난 10월 28일 제주 구좌읍 다랑쉬오름 트레킹 참여자들이 해먹에 누워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 농촌愛올래 - 2024년 농촌관광 사업
(10) 제주 작은마을 여행 ‘카름스테이’ <끝>

현직 해녀들 출동해 토크콘서트
50년 물질인생 스토리 흥미진진

마을 목욕탕인 ‘용천수’ 등 탐방
천혜자연 기반한 생활문화 확인

숲 해설가와 다랑쉬오름 트레킹
비자나무서 뿜는 피톤치드 만끽


제주=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세화마을로 시집왔는데 집에 먹을 게 없는 거야. 우리 똘(딸을 뜻하는 제주 방언) 키우려고 물질을 배우기 시작했지. 물질해서 번 돈으로 저금도 하고 용돈도 했어. 나이 드니 ‘아야 아야’ 소리가 절로 나지만 그만둘 수가 없어.”

비 온 뒤라 제법 쌀쌀했던 지난달 28일, 제주 구좌읍 세평항로 ‘질그랭이(지그시를 뜻하는 제주 방언) 거점센터’. 세화마을 어촌계장이자 ‘세화마을 현직 해녀 삼총사’ 중 막내인 이복녀(72) 씨가 세화마을을 찾은 체험객들에게 해녀로 산 세월을 풀어놓는다. 삼총사의 맏언니이자 ‘정신적 지주’인 오순례(73) 씨는 “난 밭일하기 싫어서 물질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50년이 됐다”며 이 씨의 말을 이어받았다. ‘삼다도(三多島)’답게 바람 부는 궂은 날씨에도 세화마을을 찾은 7명의 체험객은 사는 곳도, 국적도,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이내 ‘해녀 삼춘’(어른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 꺼내는 이야기보따리에 빠져든다. 부산에 거주하지만, 업무차 잠시 제주에 머물고 있다는 김구하(45) 씨는 “인터넷에서 세화마을 투어가 있다는 글을 보고 해녀마을을 돌아보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축학 전공으로 해녀학교 건립에 관한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인 오스트리아 유학생 요한나 프로하스카(여·25) 씨는 “해녀학교에 관심이 많아 친구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날 체험은 제주시 ‘농촌애(愛)올래-지역 단위 농촌관광 사업’과 연계해 이뤄졌다. 제주시는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 농어촌자원개발원이 농촌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하는 ‘농촌애올래’ 사업에 2019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이날 ‘마을 해녀 삼춘과 길거리 토크콘서트’는 세화마을 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양군모(35) 세화마을협동조합 마을 PD의 아이디어로 마련됐다. 양 PD가 파워포인트로 제작해 띄운 해녀 관련 키워드를 관광객들이 고르면 해녀 삼춘들이 설명해주는 게 이날 토크콘서트의 진행 방식이다. 가장 먼저 ‘고령화’ 키워드가 선택되고 ‘왜 해녀학교는 늘어나는데 20~30대 젊은 해녀는 없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오 씨는 “요즘 일당이 시간당 최소 1만 원 선인데, 바다에 4~5시간 들어가도 그만큼 수입이 안 나온다”며 “처음에는 다들 꿈이 크지만, 하다 보면 생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씨는 “초반엔 아주 힘들어도 익숙해지면 많이 잡고 싶을 때는 많이, 적게 잡고 싶을 때는 적게 잡을 수 있게 된다”며 “몸이 괴로워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잡으면 나도 욕심이 생기고 그렇게 몇 십 년을 하다 보니 강한 엄마가 됐다”고 말했다. 해녀 삼춘들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고단했지만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생 스토리에 관광객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두 번째 키워드로는 ‘까꾸리’가 사진과 함께 등장했다. 까꾸리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캘 때 사용하는 일종의 호미다. 오 씨는 “물속에서 손에 걸고 쓰는 우리 ‘무기’”라며 “소라, 문어도 잡고 바위에 걸고 다니기도 하는 다용도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제주 토박이인 이 씨와 오 씨가 이야기 중간중간 제주 사투리를 섞어 쓰자, 진행자인 양 PD가 “최대한 표준말을 쓰고 계시는 것”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2017년 제주 해녀 축제에서 남편을 만나 제주에 정착하게 됐다는 이소윤(여·29) 씨는 “해녀학교에 다닌 지인이 많기도 하고 세화에서 몇 달 거주한 적도 있다”며 “현직 해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 듣는 것은 처음이어서 특별한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체험객들이 지난 10월 28일 제주 구좌읍 ‘질그랭이거점센터’에서 해녀 삼춘들로부터 해녀 문화와 역사에 대해 듣고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체험객들이 지난 10월 28일 제주 구좌읍 ‘질그랭이거점센터’에서 해녀 삼춘들로부터 해녀 문화와 역사에 대해 듣고 있다. 제주관광공사 제공


질그랭이 거점센터를 나온 이들은 토크쇼에서 듣던 해녀들의 삶과 문화를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첫 장소는 센터 바로 앞 바닷가에 있는 ‘갯것할망당’. 갯것할망당은 물질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한 해신당으로 한마디로 기도 터다. 현무암으로 된 목욕탕인 ‘도구리통’에선 용천수가 뿜어져 나왔다. 용천수는 땅 밑에서 지표면을 뚫고 솟아 나오는 물인데, 예전에는 이곳에서 빨래도 하고 야채도 씻었다는 게 해녀 삼춘들의 설명이다. 해녀 삼춘과 관광객들의 여정은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비’에서 함께 묵념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충남 아산에 살다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제주로 이주했다는 조경희(여·42) 씨는 “아직 3살인 막내가 더 자라고 나면 해녀학교도 신청해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 일정에선 ‘오름의 여왕’으로 불리는 다랑쉬오름 트레킹이 준비됐다. 다랑쉬오름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분석구(원추형의 화산 형태)다. 숲해설가의 숲 설명과 함께 편백나무·비자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트레킹이 시작됐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억새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1만 년 전 제주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화산송이’(스코리아·화산암 파편)를 직접 만져보는 기회는 제주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체험객들은 우거진 나무 사이로 자라나는 고사리, 독초, 산박하를 관찰하고 세화마을에서 재배된 메밀로 만든 차를 마시며 다도를 즐겼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연결해 설치한 해먹에 누워 제주 하늘을 바라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조형란 제주관광공사 과장은 “‘작은 마을’이란 뜻의 제주 방언 ‘카름’과 영어 ‘스테이’(머물다)를 조합해 ‘카름스테이’란 제주 마을 여행 통합 브랜드를 운영 중”이라며 “농촌애올래 덕분에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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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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