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의 총선 참패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지방선거를 1년 반 앞둔 국민의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겐 깊은 한숨을 남기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여당이 정권을 내주는 도미노 현상이 점차 한국을 향해 들이닥치고 있다. 미국에선 상·하원 선거까지 모두 공화당이 싹쓸이하는 ‘레드 스위프(red sweep)’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여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한국에선 2026년 6월 지방선거와 2027년 3월 대통령 선거까지 야당이 승리하는 ‘블루 스위프’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 같다. 위기감 속에 지난달 말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여당 중진의원들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한동훈 대표의 갈등,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의혹 등에 공개적으로 비판적 의견을 밝혔다. 지방 정부 수장들이 시국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이례적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현안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윤석열 정부의 성패에 정치적 명운이 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년 반 여당 지자체장들은 나름 준비된 시장·도지사로서 행정 능력을 선보이며 고군분투해왔다. 지난 9월 리얼미터의 광역단체장 직무에 대한 긍정평가 조사 결과 김두겸 울산시장, 박완수 경남지사, 이장우 대전시장, 김태흠 충남지사 등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은 상위권으로 조사됐다. 김태흠 지사, 김두겸 시장, 박완수 지사, 이장우 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오세훈 시장 등은 직무수행 평가가 지역의 정당 지지율보다 상당폭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대전시, 인천시, 서울시, 울산시 등은 주민들의 생활 만족도가 60% 이상으로 최상위권으로 나타났다. 즉, 대통령과 여당이 추락하는 사이 지자체장들은 최선을 다해 능력을 증명해왔던 셈이다. 실제 지역 소멸 위기까지 불러온 저출생 문제에 대해 지방 정부들은 파격적인 정책을 통해 단기간에 혼인율 등을 높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결실도 고물가,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경제 문제에 더해 대통령의 허술함과 영부인의 수준 낮은 언행 앞에 모두 가려지는 판이다. 차라리 이들 중 누군가 대통령이었다면 현 국정 상황보다는 나았을지 모른다.
차기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다음 해 3월에 치르는 대선 참패와 정권 교체의 예고편일 뿐이다.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방 권력의 교체는 곧 전국의 시도 선거 조직과 여론이 야당으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운동장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면 그 균형을 되찾기까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한번 권력을 틀어쥔 야당은 절대로 대통령과 영부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어떤 묘수를 발휘해서라도 반드시 법의 심판대로 몰아세울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결과적으로 지방선거를 앞둔 지자체장과 대통령은 싫든 좋든 운명 공동체가 됐다. 대국민 사과까지 한 윤 대통령은 이제 부인의 내조에서 벗어나 능력 있고 정치 감각 뛰어난 지방 정부 리더들과 수시로 머리를 맞대는 광장으로 나서야 한다. 이들만큼 노련한 정치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 결국, 윤 대통령의 진정한 변화와 쇄신은 전국의 밑바닥 여론과 현실을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