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1973년 군 보안사 끌려가 간첩 혐의로 징역 15년 받고 6년 옥살이
재심 재판부 "기본권 보장 최후 보루 사법부가 임무 소홀해" 사과

박정희 정부 시절 ‘재일동포 간첩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돼 6년간 옥살이를 했던 고(故) 최창일 씨가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최 씨의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재심 원심을 14일 확정했다. 최 씨가 1974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지 51년 만이자 재심 청구 4년 10개월 만이다.

최 씨는 1941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교포 2세로 태어나 도쿄(東京)대 자원개발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한국 탄광기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최 씨는 서울에 거주 중이던 1973년 6월 국군방첩사령부의 전신인 육군 보안사령부에 간첩활동 혐의로 연행됐다. 수사·재판기록에는 ‘북한에서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최 씨의 자백이 담겼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최 씨는 6년간 옥살이를 하다 광복절 특사로 석방됐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최 씨는 1998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백강진)는 지난 5월 최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임무를 소홀히 했다. 사법부의 일원으로서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최 씨 측 변호를 맡은 최원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14일 입장문을 내고 "1만8315일 만에야 간첩이라는 주홍글씨가 벗겨졌다"며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면서도 동시에 재심 과정에서 유족에게 가해진 검찰의 2차 가해를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 후 서울고검이 상고장을 제출했는데 검찰 상고는 과거사정리법과 대검 공안부가 스스로 만들어 일선에 배포한 ‘과거사 재심사건 대응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씨 유족들은 지난 6월 재심에 대한 검찰의 상고가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강한 기자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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