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스포츠 에이전트를 소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줄거리는 간단했다. 잘나가는 에이전트였던 제리 맥과이어는 돈과 이익보다는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제안서를 회사에 냈다가 해고를 통보받는다. 맥과이어는 마지막으로 남은 고객인 퇴물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로드 티드웰이 성공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소신을 지켰고, 일과 인생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다.
국내 프로야구는 스토브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년 겨울만 되면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요동친다. 2021년 역대 최고 총액인 989억 원을 찍었고 2022년 역시 823억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도 605억 원의 금액이 FA 시장에서 오갔다. 올겨울엔 이른바 ‘특급’으로 불리는 매물이 적은 상황에서도 14일 현재 412억 원이 거래됐다. 올해도 총액 500억 원을 거뜬히 넘길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 프로야구에서 A 에이전시가 ‘공공의 적’이 되는 분위기다. FA 시장 개장을 앞두고 B 구단 단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요즘 프로야구가 A 에이전시에 놀아나고 있다. A 에이전시가 내년 우승팀을 정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팬들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 에이전시에 적대감이 상당하다. 물론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투수는 FA 시장에서 부르는 게 값. 에이전시에 최우선 덕목은 ‘돈’이지 ‘로열티’가 아니다. 최근 이적시장에선 C 선수의 FA 이적을 놓고 시끌시끌했다. 돈 때문에 진정 원하는 원소속팀을 홀대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독점’은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특급 선수들이 한 에이전시 쪽으로 몰리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보를 독식한 상황에서 선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을 짤 수 있다. 불과 몇 해 전 특정 포지션에 선수를 다수 보유했던 A 에이전시는 소속 한 선수의 FA 계약을 이용해 다른 선수의 몸값을 크게 키웠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제 몇몇 구단은 “시장 독점 수준의 A 에이전시 소속 선수들을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몇 해 전부터 독점에 편법까지 더해졌다. 에이전트 규정에는 ‘한 대리인이 동시에 구단당 선수 3명, 총 선수 15명을 초과해 대리할 수 없다’는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몇몇 에이전시는 FA를 앞두고 일괄적으로 대리인 계약을 신고했다가 계약이 끝나면 대리인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는 방식으로 규정을 피해 간다. A 에이전시도 마찬가지. 선수를 넣고 빼며 관리 규정을 피해 가는 모습이 ‘떴다방’ ‘위장이혼’에 비유된다.
D 구단 관계자는 “에이전트는 일부 고액 연봉 선수에게만 좋은 제도”라고 귀띔했다. 버젓한 에이전시를 갖고 있음에도, 계약 우선순위에서 밀려 선수들은 ‘찬밥 대우’를 받기 일쑤다. A 에이전시에서 나온 한 선수는 “일부 선수의 이득만을 좇아 많은 소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도 비슷한 양상이다. KBO리그에서 총액 100억 원 이상을 받는 선수들의 규모는 5% 내외. 프로야구를 지탱해 주는 힘은 1.5∼2군 선수들이다. 애초 에이전트의 도입 목적은 ‘약자 보호’였다. 최근 이적 시장에선 제리 맥과이어 같은 훈훈한 감동 스토리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