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예상보다 압도적으로 승리한 뒤 2주가량 지났다. 뉴욕의 한 한국계 인사는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그는 누가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하느냐는 선거가 아니라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선거가 됐다고 말했다. 누가 미국의 진짜 주인인지를 가리는 선거라는 의미로 나는 이해했다. 그간 차곡차곡 쌓인 백인 주류 진영의 불만들, 거기에 민주당 집권 시기 경기 침체와 팬데믹 이후 계속된 인플레이션이 만든 분노들이 트럼프를 다시 백악관으로 보냈다. 4년 전 트럼프의 행태를 몰라서가 아니라, 더 큰 위기감이 트럼프를 찍게 했을 것이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은 “젊을 때 미국에 와서 내 평생을 보냈는데 이번 대선이 가장 침울하다”고 했다. 미주 한인신문에는 트럼프 복귀에 영주권자들의 시민권 취득 문의가 크게 늘었다는 ‘웃지 못할’ 기사가 떴다. 백인들의 위기감, 분노가 다시 소수인종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구도다. 트럼프를 선택한 선거 결과가 미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갈지는 계속 지켜볼 일이다.

트럼프 당선에 대한 한국 정치인들의 고민, 한국인이 갖는 불안감은 이해할 수 있다. 즉흥적(으로 보이는, 그러나 계산된 것)인 정책 결정, 무례(해 보이지만 ‘거래’를 위한 포석이 깔린 듯)한 발언들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미국과 얽힌 게 많은 한국 입장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근거 없는 우려와 불안감도 아니다. 워싱턴DC에서는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은 당연시되는 분위기고, 주한미군 감축도 협상 전략 차원이든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 수정 차원에서든 거론하지 못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기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깜짝 정상회담 역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작으로 한국 기업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경제정책 노선 수정도 가시화됐다. 하나같이 한국 정치와 경제, 산업을 뒤흔들 이슈다. 이미 트럼프의 공습은 시작됐다. 트럼프의 재채기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한국인들이 그것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건 안다.

결국 한국인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는 것도 윤석열 정부밖에 없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행보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다. 사업가 트럼프에게는 영구불변의 ‘동맹’의 가치보다는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한 답 혹은 상호주의적 조치를 얼마나 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미국에 이미 어느 나라 못지않은 기여를 하고 있고, 그래야 하는 체급도 됐다. 한미동맹이 그냥 시혜적인 관계로만 커오진 않았다. 우리 글로벌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마다할 리 없는 트럼프 정부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잘 엮어서 트럼프와 만나고 맞서느냐다. 무조건 트럼프와 급히 만나는 게 답이 아니라는 사람도 많다. 자칫 트럼프의 ‘숙제’만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고는 관계의 진전을 꾀할 수 없다. 내치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깜짝 만남이 아닌, ‘우리가 남이가’ 수준의 대화가 아닌, 발언 하나하나에 전략과 ‘수’가 담긴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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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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