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경제부 부장

상장기업인 반도체 기판 제조기업인 A 기업은 얼마 전 유상증자를 발표하면서 투자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 회사는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어 신규 공장 증설 및 설비투자 안과 5500억 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 안을 일괄 의결했는데, 두 안건에 대한 공시를 시차를 두고 한 것을 놓고 투자자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통상 증시 ‘호재’로 여겨지는 신규 투자 공시는 시간 외 단일가 매매 중에, ‘악재’로 통하는 유상증자 공시는 시간 외 단일가 매매 종료 후에 했다. 호재에 급등했던 주가는 악재에 곧바로 곤두박질쳤고,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들은 울분을 토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B 사는 최근 자회사인 C 사를 통해 국산 폐암 신약을 발굴했다. 그런데도 B 사 주가는 한 달 전에 비해 40% 이상 추락하며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B 사가 추진 중인 C 사의 기업공개(IPO)에 투자자들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어서다. 지난달 있었던 기업설명회에서는 C 사의 IPO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는데, 다음 날 기습적으로 IPO 계획을 공시한 것이다. ‘깜깜이 상장’ 발표인 데다, 사실상 ‘물적 분할(쪼개기 상장)’을 통한 지분가치 희석으로 인식되면서 투자자들이 분노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유독 한국 주식시장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이른바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8일 기준으로 1024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월 말 대비 12.51%나 증가했다. 테슬라로 한 달 사이 50%가량의 수익을 보고, 비트코인으로 하룻밤에 수십%의 이익을 얻는데, 미국 주식이나 가상자산 시장으로 갈아타지 않을 투자자가 어디 있겠는가.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코스피 주식 보유 총액은 지난 15일 기준 637조4877억 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왜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고, 기대감도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 리스크’가 더해졌다.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높은 관세를 내세워 무역 갈등을 예고한 트럼프의 당선이 망설이던 투자자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투자자들의 이런 실망감은 국내 상장사들의 투자자 기만 행태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전문가들은 상장 기업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진단한다. 지극히 상투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다. ‘국장’을 떠나 엔비디아와 테슬라, 비트코인에서 투자의 ‘맛’을 본 이들이 다시 국장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그야말로 ‘희망’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이런 판단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A 사는 밸류업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상장사다. 이런 기업들마저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장터에 손님이 몰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 아닌가. 심지어 대기업들조차 쪼개기 상장 등 주주들을 기만하는 관행이 여전하다. 투자자를 존중하지 않는 상장사들의 이런 행태가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밸류업 노력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이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임대환 경제부 부장
임대환 경제부 부장
임대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