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18일 677조 원에 이르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를 열어 증·감액 심사에 들어갔다. 여야는 ‘정부안 사수’와 ‘대폭 삭감’을 내세우고 있어 정부 안(案)에서 얼마나 증감될지 주목된다.

과거 민주화 이전 우리나라의 예산권한(power of the purse)은 전적으로 행정부에 있었다. 예산편성권을 가진 행정부의 예산안이 곧 예산으로 확정되곤 했다. 민주화 이전 시기의 특성이 그 후에도 일정 부분 지속되면서 ‘제왕적 대통령’ 담론이 이어졌고, 예산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뜻대로 관철되는 것으로 간주돼 왔다. 이후에도 여대야소로 국회 권력이 행정부와 정당이 같은 경우 예산심의를 통한 수정은 그리 의미 있는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OECD 대다수 회원국이 의원내각제 형태여서 이들 국가의 예산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당의 지위를 잃는 순간 정권 자체가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상황에서는 전혀 다른 과정을 밟게 된다. 특히, 여야 관계가 상생적이기보다는 적대적인 작금의 여건에서는 국회의 예산심의가 대통령의 예산계획을 상당한 정도로 통제하게 된다. 3김의 퇴장 이후, 국회의 힘이 강화됐고 국회의 행정부 견제에 대한 장치들이 주로 인사청문회나 국정감사 등 정치적 통제 측면에서 다뤄졌다. 이제는 예산심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커지면서 국회의 행정부 견제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적 통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만큼 책임도 나눠 지게 된 것이다.

국회 예산제도의 특성은 예산안 수정에 있어서는 약한 재정권한을 보인다. 그 반면에 예산심사 기간, 예산 정보 접근성, 그리고 상임위원회 구조 등 조직 역량은 상당히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 예산심의 행태는 상임위원회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누락된 민원을 반영해 대체로 증액 지향성을 보이는 반면, 예결위의 종합심사에서는 이를 다시 조정해 균형 지향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 국회가 정책적 차원에서 예산을 통제하는 수준은 미미했지만, 예산심의 과정에서 예결위는 핵심적인 행위자로서 ‘거래 정치’ 또는 ‘쪽지예산’ 행태를 보여왔다.

현행 법체계에서 예산 증액 또는 새 비목(費目) 설치는 행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야당의 의도가 완전히 관철되긴 어렵다. 그 결과 정치적 거래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 부분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주인-대리인’ 문제나 공유지(公有地)의 비극이 발생하기 쉽다. 한마디로, 합리적인 예산 배분과는 거리가 먼 결과물이 만들어질 우려가 크다. 실제로 국방부 예산심의에서 국가 정보 역량 강화가 시급한데 야당은 대북정보활동예산 기본경비를 삭감하고 민노총의 불법 폭력집회를 제지한 경찰의 특수활동비 등을 삭감했다. 검찰과 감사원의 특수활동비는 삭감한 반면, 야당 대표 재판을 앞둔 법원 예산은 증액하는 등 예산권력의 남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예산심의는 건전재정 기조 아래 국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지출을 재구조화해야 하므로 국회의 역할이 막중하다. 과연 여야가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가재정 건전화의 조화를 이룬 예산안 심의 결과를 내놓는지 지켜보겠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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