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퇴직연금을 노후 자산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돈을 울타리에 가둬 놓고 지키기만 할 뿐 키울 생각이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대부분은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치우쳐 있다. 확정기여형(DC형) 퇴직연금 계좌의 경우 적립금의 82%,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는 72%나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나머지 20~30%만 펀드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이 차지한다.
퇴직연금이 소득 없는 노후의 경제적 보루인 만큼, 안전성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하지만 퇴직연금이 노후자산으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물가상승률을 초과하는 수익률을 추구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린 선호도는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도 있다.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에 대한 통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입자들의 투자 성향의 변화가 엿보인다. 5년 전에는 채권형 상품에 대한 비중이 70%였다가 점점 줄어들어서 현재는 4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주식형, 혼합형 상품의 투자 비중은 5년 전 22% 정도였다가 현재는 50%로 2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말하자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과거에는 안정적인 상품 위주로 투자하다가 현재는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에 눈뜬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이제 본인에게 적합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투자상품을 찾기 위해 나서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이들의 탐색 열기에 불을 붙일 만한 새로운 제도가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바로 지난달 31일부터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이다. 현재는 DC형 퇴직연금이나 IRP 계좌를 다른 금융회사로 옮기려면 가지고 있던 상품(실물)을 모두 해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제도가 시행되고 나면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예금, 채권 등 주요 상품들을 해지하지 않고 그대로 새 회사로 옮길 수 있다. 리츠, 머니마켓펀드(MMF), 주가연계증권(ELS)처럼 이전이 불가능한 상품도 있지만 가능한 상품들이 더 많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이용해 계좌를 옮기고 싶다면 무엇부터 따져봐야 할까. 만약 A라는 금융회사로 내 계좌를 옮기려고 한다면 A 회사에서 취급하는 퇴직연금 상품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상품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해당 상품이 없다면 그 상품은 팔고 이전해야 한다. 따라서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를 새로운 회사로 선택하는 것이 가입자에게 유리하다. 제도 시행에 발맞춰 이 확인 작업을 도와주는 서비스도 각 금융회사의 홈페이지 및 앱에서 오픈 예정이다.
노인 인구가 20%를 넘어가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코앞이다. 연금개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길어진 노후생활의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 차원의 고민과 실질적 행동도 속도를 내야 한다. 퇴직연금 투자에 대한 관심은 그 첫걸음이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이제 막 시행된 만큼 어떤 회사에 내 퇴직연금 계좌를 두고, 어떤 상품으로,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