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해법 길 닦은 트럼프 1기 아브라함 협정 확대에 나설 것 사우디는 우라늄 농축權 요구
美 요구 대응한 尹 리스트 중요 원자력협정 등 전화위복 가능 빈 살만 외교술 벤치마킹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1기 때 첫 해외 방문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택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영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조 바이든 대통령, 캐나다·멕시코를 각각 첫 방문국으로 정한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선택이다. 트럼프는 내년 1월 20일 취임 후에도 사우디를 가장 먼저 방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각료 인선 와중에 유대계 부동산사업가 스티브 위트코프를 중동 특사로, 목사 출신인 전 아칸소주지사 마이크 허커비를 이스라엘 대사로 내정해 발표한 데에서도 그런 의지가 읽힌다.
트럼프 1기는 코로나 팬데믹 관리 실패 등으로 대선에 패한 뒤 1·6 의사당 난입사태란 대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지만, 아랍·이스라엘의 데탕트를 연 아브라함 협정은 대표적인 외교적 성과다.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은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뒤 2022년 10월 백악관에서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을 했다. 이후 모로코와 수단도 이 협정에 가입했다. 아브라함 협정의 핵심은 중동 수니파의 종주국인 사우디의 참여인데 트럼프의 낙선으로 일단 중단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유산인 아브라함 협정 계승을 재확인한 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막후 지원에 나섰다.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MBS)이 우라늄농축시설을 수교 조건으로 내걸자 국무부·에너지부가 실무 작업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10·7 하마스 테러 이후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은 중단 상태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의 전쟁 수습 후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는 트럼프 2기 최우선 과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빈 살만이 이스라엘과의 수교 조건으로 농축우라늄 시설을 내걸고 관철해낸 것은 윤석열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체 원자력 기술은 물론 원자력발전소조차 없는 사우디가 벼랑 끝 외교 전술로 미국 제공의 농축우라늄 핵시설을 갖게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미국 외교의 민낯이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핵연료시설이 석유 고갈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지만, 이란의 핵 개발에 대비한 잠재 핵 능력 확보용이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미 대선에 앞서 윤 대통령이 골프 연습을 8년 만에 재개했다. 트럼프와의 골프 케미로 외교 공조를 다졌던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비법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인데 그런 노력보다 더 필요한 게 있다. 사실상 단임인 트럼프 4년 중 윤 대통령이 함께할 임기 2년 반 동안 집중할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트럼프 측에서는 벌써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선박·군함 건조 협력, 군함 유지·보수·정비(MRO)사업 협력 등 수많은 제안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의 요구 리스트에 맞서 우리가 필요한 원전 연료 자체 생산, 자체 핵 개발, 핵잠수함 건조 등 핵심적인 경제안보 우선순위를 정하고 역제안 플랜을 짜야 한다. 화급한 것이 농축우라늄 시설이다. 대한민국은 기반이 전무한 사우디와 달리 원전을 26기 가동하는 원전 강국이다. UAE 바라카 원전 건설·가동에 이어 체코 원전 수주도 성사 직전이다. 현대건설은 불가리아 원전 설계계약도 체결했다. 원전 연료인 우라늄 농축만 못 해 러시아로부터 33%를 수입하며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지불한다.
2026년부터 적용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전년보다 8.3% 인상된 1조5192억 원으로 타결, 국회 비준을 앞둔 상태다. 트럼프 취임 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위한 재협상을 요구하면 일본 수준의 농축·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요구해야 한다. 트럼프 측이 한미동맹을 거래적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전략자산 전개 비용, 핵우산 제공 비용을 건건이 요구할 때엔 동맹인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나아가 중국의 핵 팽창을 견제하는 데 유용하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트럼프의 미국 대개조 플랜이 대성공을 거둘지, 충성파 인사들의 좌충우돌로 대혼돈에 빠져들지 예측불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미국이 거부하지 못할 요구를 제시해 관철한 MBS의 외교술을 윤 대통령이 활용한다면 트럼프 2기는 대한민국 안보를 업그레이드할 역사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