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현의 Deep Read - 트럼프 외교안보라인과 한국

트럼프 복귀로 ‘규칙기반 국제질서’ 종언… 美, ‘글로벌 외교’로부터의 탈피 추구할 듯
‘거래적 접근’엔 ‘거래적 잣대’로 응수가 답… 북핵 용인 따른 핵도미노의 위험성 부각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페루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와 정상회의를 갖고 북한의 우크라이나전쟁 파병 규탄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지난해 8월의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 합의를 재확인하고, 이를 조율·이행하기 위한 ‘한·미·일 사무국’ 설립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한다는 차원일 것이다.




◇트럼프 시대

내년 1월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미국과 상당히 다른 나라가 될 전망이다. 외교·안보 분야는 특히 그렇다. 트럼프의 복귀는 사실상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건설된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종언’을 의미한다.

트럼프 시대에서 오늘날 세계 경제의 번영에 기여한 자유무역제도는 관세장벽으로 대체될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이 의존하는 핵우산은 미국 대통령의 변덕에 따라 언제든지 거둬질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미국 외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민주주의 확산도 더 이상 추진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트럼프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그동안 백악관을 지배해온 ‘선의의 국제주의자’들을 척결하는 일종의 우상 파괴 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국 정치에서 광범위한 트럼프 연합이 형성됐고, 트럼프가 더 이상 일탈적 정치세력만을 대변하는 후보자가 아님을 입증했다. 집권 공화당은 기존 친기업·백인·고학력·남성 위주 정당에서 외연을 확장해 다인종과 노동계층 기반 정당으로 변신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향후 4년은 공화당, 아니 정확히는 트럼프의 시대다. 재선이 불가능한 트럼프는 다음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향후 2년이 사실상 자신의 어젠다를 구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트럼프는 이 기간에 자신의 어젠다를 최대한 밀어붙일 것이다. 트럼프 1기와 달리 신속히 추진되는 내각 인선 과정을 보면 그의 의도가 엿보인다. 지금까지 주요 고위직에 내정된 사람들은 마가 신봉자, 트럼프 충성파, 워싱턴 아웃사이더, 강성 인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트럼프 시대 외교·안보와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경 외교·안보라인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된 마이클 왈츠는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장교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공화당 내에서도 대표적인 반쿠바·반중국·반이란 인사로 꼽힌다. 북한인권법 공동 발의자이자 대북 강경파이기도 하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고 육군 대위 전역 후 폭스뉴스 진행자로 활동한 게 국방 관련 이력의 전부다. 국가정보국(DNI) 국장에 지명된 털시 개버드는 정보 관련 경험이 전혀 없고 이슬람 테러와 북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현재까지 지명됐거나 내정된 고위직 인사 중에는 예상 밖 인물이 많다. 정부효율부(DOGE) 공동수장에 지명된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나 법무장관 맷 게이츠, 보건부장관 지명자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등도 상원 인준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되는 인물들이다.

외교·안보 분야에 내정된 인물들은 대체로 대중·대북 강경파 위주이고, 한반도보다는 중동 전문성이 더 돋보이는 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까지 한반도나 동북아에 전문성을 가진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외교·안보 고위직들이 트럼프의 어젠다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으로 가정한다면 한국으로서는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우려는 방위비 분담 증액, 미·북 간의 알맹이가 빠진 핵 거래, 한·미 통상관계 조정, 한국 기업들의 중국 압박 동참 요구 등이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핵심은 글로벌(globalist) 외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글로벌 외교란 미국에 직접 이익이 되지 않는 국제분쟁에 끝없이 개입하고 전쟁에 끌려다니며 글로벌 제도를 국가별 양자 관계보다 중시하는 특징을 지닌다.

◇거래적 접근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모든 문제를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 관점에서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손해 보는 거래를 거부한다. 트럼프는 대외관계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고 다른 나라들만 이익을 취하는 불균형 구조를 시정하는 데 중점을 둘 것이다. 경제·통상 분야의 불균형 구조란 미국의 무역적자를 말한다. 군사·안보 분야의 불균형은 미국 동맹국들의 불충분한 안보 기여, 예컨대 미흡한 방위비 분담, 국내총생산(GDP) 2%에 못 미치는 국방비 지출 등을 일컫는다. 한국은 대미 흑자 10대국 중 8위이며, 트럼프가 “부국인데 방위비를 안 낸다”고 불평하는 나라다.

트럼프 2기의 첫 2년이 한국에는 큰 도전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한국에 ‘거래적 잣대’를 들이밀면 한국도 ‘거래적 관점’에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방위비 분담 증액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분담금을 올리되 우리는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국방예산 규모를 생각하면 증액 여유가 없는 건 아니다.

미·북 간 직접 핵 거래 가능성, 특히 스몰 딜 가능성에 대해서는 ‘코리아 패싱’이 초래할 문제점과 북핵 용인이 초래할 핵 도미노의 파국적 위험성을 부각해야 한다. 인플레감축법 폐지 같은 통상정책 변화에 대해서는 한국이 중요한 경제안보와 방산협력 파트너라는 점을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 대중국 압박 동참에 대해서는 한국이 이미 반도체나 배터리 등 핵심 분야는 미국과 더 협력하고 있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지금부터 내년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할 때까지 2개월 반 정도 인수위 활동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 이 기간에 특사 파견 등을 통해 한·미 동맹 현안과 안보 상황, 한국이 가진 우려를 트럼프 진영에 가감 없이 전달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위기를 기회로

트럼프 2기가 1기 때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흔들리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도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면 정권 초기의 과속이나 과욕이 중간선거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을 잘 안다. 미국 대선과정에서 쏟아져나온 험한 레토릭 가운데 무엇이 얼마나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 잘 판단하고 대응을 준비해야 할 때다. 그래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前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용어 설명
‘글로벌(globalist) 외교’는 전 세계가 상호 연결돼 있다는 신념과 정치 이데올로기를 실천하는 외교.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는 글로벌 외교를 배격하고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채택.
‘거래적’이란 원래 조직 리더가 구성원들과 교환·협상에 기초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 이런 교환·협상 관계에 토대한 리더십을 ‘거래적 리더십’이라 하며 이는 트럼프 대외전략의 토대임.

■ 세줄 요약
트럼프 시대 : 트럼프의 복귀는 사실상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건설된 ‘규칙기반 국제질서의 종언’을 의미. 트럼프의 ‘마가’는 그동안 백악관을 지배해온 ‘선의의 국제주의자’들을 척결하는 우상 파괴 운동 같은 것.
강경 외교·안보라인 : 트럼프 2기 외교·안보 진용은 ‘마가’를 신봉하는 강경 우파 인사들로 채워짐.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핵심은 기존 ‘글로벌 외교’에서 탈피하는 것. 이는 한국 안보의 불확실성 높여.
거래적 접근 : 그의 ‘거래적 접근’에 한국은 ‘거래적 잣대’로 응수가 답. 미·북 ‘핵 거래’ 가능성에는 ‘코리아 패싱’이나 북핵 용인이 초래할 핵 도미노의 파국적 위험성 부각해야. 트럼프 2기는 한국 안보의 시험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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