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중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 맨 왼쪽이 필자.
1970년 중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과 찍은 사진. 맨 왼쪽이 필자.


■ 그립습니다 - 어릴 적 친구들

나에게는 코흘리개 때부터 죽마고우 다섯이 있었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우정이 깊었다. 한동네에 살면서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여섯 명이 학교 갔다 와서 공부는 뒷전이고 모였다 하면 자치기, 제기차기, 말뚝박기, 야구놀이를 하면서 어린 마음에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어떤 놀이라도 열심을 다했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힘들 때면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하는 곳으로 가서 우리 친구 중에 제일 짓궂은 친구 하나가 미리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연필 깎는 칼로 재미있게 놀고 있는 고무줄을 자르고 동시에 모두 도망을 쳤다. 그렇게 도망을 치다가 숨이 차고 지치면 남의 집 처마 밑에 몰래 숨어있다가 발각되는 친구는 여지없이 여자아이들한테 둘러싸여서 두들겨 맞았다.

겨울이 되어 하얀 눈꽃이 내려 쌓이면 눈사람 만들기 시합과 눈싸움으로 추운지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노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썰매를 만들어 얼음이 언 동네 연못에 가서 썰매를 열심히 탔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얼음이 얇아서 거기 빠진 친구는 금방 아이스맨이 돼 로봇 걸음으로 집으로 가기도 했다.

뒷동산 중턱에는 고구마밭이 있었다. 주인이 고구마를 모두 캐가고 나면 아주 작은 고구마들이 땅속에 몇 개씩 남아 있는 것을 우리 친구들 모두가 합심하여 캤다. 그런 다음 주위에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우고 그 위에 작은 고구마 몇 개를 구워 먹다가 검은 연기와 그을음으로 콧구멍과 얼굴이 검어진 것을 보며 서로 웃음이 터지고 설익은 고구마를 맛있게 먹었다. 고구마를 열심히 굽다가 친구 하나는 옷을 태워 집에 가서 부모님께 혼나는 일도 있었다.

방학이 되면 숙제를 핑계로 가장 방이 큰 친구네 집으로 모였다. 그 친구 아버님은 종로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한의사였다. 어느 방 서랍장 안에는 감초, 계피 등 엄청 많은 종류의 한약재가 있었다. 우리는 숙제를 하다가 심심하면 톡 쏘는 매운맛이 있는 계피, 쓴맛과 단맛이 살짝 있는 감초를 몰래 훔쳐 먹었다. 그러다 그 친구 형한테 들켜서 단체로 손들고 벌을 받은 적도 있다. 이렇게 사이가 좋았던 어릴 적 친구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 개구쟁이들이 성장해서 기계 만드는 공장을 하는 친구,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하늘의 별을 따 양어깨에 두어 개씩 달고 우리나라의 하늘을 지키는 전투비행단장을 하던 친구, 음악을 전공한 친구, 선생님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나는 경찰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중 친구 2명은 나이 쉰 살도 간신히 턱걸이하고 무엇이 바쁜지 이곳에서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먼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미국과 호주에 이민 간 친구들도 있고, 이제 곁에 남은 친구는 단 하나밖에 없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서로 사는 게 힘들고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잘 못 보고 살아가고 있다. 세월을 거꾸로 돌아가서 천진난만했던 그 어린 시절이 다시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옛날 남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쳐다보노라면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세월로 돌아간 기분이고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제 나이가 먹어 7학년이 넘으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머지않아 오래전 저곳 하늘나라로 먼저 여행을 떠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을 하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퍼진다. 친구들아, 우리 모두 코 흘리고 철없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깨동무하고 낙엽을 밟으며 가을 냄새를 맡으면서 산책길도 걸어보고 그렇게 신나게 놀아보자!

주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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