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데, 디즈니는 망해도 30년은 버틸 것 같다. 20∼21일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에서 열린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 2024’를 이틀간 지켜보며 든 생각이다.

무대 위 미키마우스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취재진 500여 명이 탄성을 질렀고, ‘미녀와 야수’부터 ‘겨울왕국’까지 100년 넘게 쌓인 디즈니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저마다 추억에 잠겨 압도되는 순간. 디즈니가 세월과 자본으로 끌어모은 수많은 지식재산(IP) 덕분에 이러한 기적이 가능했다.

디즈니 역시 최대 강점이 IP임을 숨기지 않았다. 루크 강 월트디즈니컴퍼니 아태지역 총괄 사장은 20일 “우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깊이 있고 폭넓은 IP를 보유하고 있다”며 “디즈니의 IP는 많은 이들의 인생에 지금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던 2022년 쇼케이스 때와는 큰 차이다.

디즈니는 향후 공개될 콘텐츠에 IP를 적극적으로 재활용한다. 다음 달 개봉하는 ‘무파사 :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프리퀄격 실사 영화다. 올해 최고 흥행작이자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인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에서 라일라의 꿈 만들기란 소재를 가져온 애니메이션 시리즈 ‘드림 프로덕션’도 내달 11일 디즈니+로 공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6년 픽사를 시작으로 마블 스튜디오(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 20세기폭스(2019년) 등을 인수한 디즈니는 ‘디즈니 같지 않은’ 거위들이 낳은 황금알을 독식 중이다. 20세기 스튜디오의 ‘아바타’도 디즈니 것이고, 서치라이트 픽처스의 ‘가여운 것들’도 디즈니 것이다.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에 기댄 캐스팅, 마블 영화의 잇단 실패, 넷플릭스에 눌려 체면 구겼던 디즈니+ 등 각종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디즈니는 올해 4분기(회계연도 기준 7∼9월) 매출액 225억7400만 달러로 월가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

디즈니가 저력을 발휘한 배경에 IP가 있음은 물론이다. 대신 최근에 주력했던 PC주의는 살짝 내려놓았다. ‘아이언맨’의 후계자로 밀었던 ‘아이언하트’를 극장 대신 슬그머니 디즈니+로 공개하는 게 대표적이다. PC주의가 더 이상 그들의 최고 가치는 아니지만, 디즈니는 여전히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콘텐츠 안에서 융화시켜 다양성 추구를 동시에 이뤄내고 있다. IP 왕국 디즈니가 무섭게 진화하고 있다.
이정우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