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 경제부 차장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DC의 백악관으로 복귀한다. 이를 두고 누구는 위기를, 어떤 이는 기회를 말한다. 이런 상황 자체가 말 그대로 ‘불확실성’의 방증이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당선인의 지난 1기 재임 시절 내내 세계의 많은 대미(對美) 업무 관계자는 수시로 그의 트위터(현재의 ‘X’) 계정을 들여다보며 그가 무슨 정책을 거론할지 애를 태워야 했다. 이번에도 각국의 통상 당국은 당장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미국이 어떤 카드를 들고나올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대미 투자·수출 비중이 큰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현재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펼쳐온 정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대미 투자의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또, 미국의 관세 장벽이 높아지며 대미 수출 역시 일정 규모 위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한미 통상 관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줄 때 주더라도 우리도 얻을 것은 얻자”는 향후 협상의 방향성을 강조한다. 이번 미 대선 후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언급한 조선 같은 분야 말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복귀와 별개로 최근 수년 사이 글로벌 조선업은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고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예를 들어 영국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신조선가지수(NPI)는 전년 동기 대비 8% 오른 189.96으로 집계됐다. NPI는 46개월 연속 상승세이며 불과 4년 전인 2020년 9월 대비 약 50% 오른 수준이다. 이런 슈퍼사이클의 와중에 국내 조선업계, 이른바 ‘K-조선’은 지난 7월 기준으로 200조 원에 달하는 3∼4년치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K-조선은 LNG운반선 같은 특수선 기술력이 뛰어나다.

반면, 1920년부터 미국 연안을 오가는 모든 선박은 자국 내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존스법’으로 미국 조선업은 오히려 쇠퇴한 상태다. 온실 같은 보호를 받는 동안 미국 조선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잃었다. 따라서 이 시점에 트럼프 당선인이 K-조선을 언급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민간 분야든 군사 분야든 중국과 해양 패권을 다퉈야 할 판에 수주량으로는 세계 최대를 점하고 있는 중국 조선업에 손을 내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마침 미 해군 7함대 군수지원함 ‘월리시라’호가 지난 9월부터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 3개월간 창 정비를 받고 있다. K-조선이 미 해군 발주의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수주한 최초의 사례다. 또, 향후 미 해군이 발주하는 신규 군함 건조사업을 수주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군함뿐만 아니라 K-조선은 동맹, 중요 교역 상대국이란 양국 관계를 활용해 쇠락한 미국의 조선업과 새로운 가치 사슬을 구축하는 전략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2기’를 앞두고 대미 투자·수출 불확실성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원자력, 반도체 등 비록 미국이 최첨단기술을 주도하지만, 설비제조·생산·유통까지 혼자 다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국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좋은 파트너라는 점에서 기회는 열려 있다.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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