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Bubs 흥행 막은 스웨덴 노동법
노스볼트 등 첨단 기업도 파탄
中 공세에 韓 기업들 질식 직전

엔지니어가 만든 K-제조 신화
경직된 ‘주 52시간制’ 바꿔
한국판 노스볼트 재앙 막아야


스웨덴 캔디가 두바이 초콜릿과 함께 글로벌 디저트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여름 SNS 인플루언서들의 쇼트폼 ‘먹방’이 불을 붙였다. 마시멜로와 껌을 섞은 듯한 독특한 젤리형 식감에다 동물성 첨가물이 없는 ‘비건’이란 점도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뉴욕·런던의 오픈 런이 입소문을 타면서 국내 소비자들은 해외 직구까지 불사할 정도다. 500g 한 봉지당 웃돈을 얹어 5만 원에 사들인다. 정작 제조사인 ‘법스(Bubs)’는 큰 재미를 못 봤다. 폭발적인 수요에도 불구하고 “생산 제품이 전량 판매됐고 재고는 동났다”며 회사 문을 걸어 잠갔다. 최고 흥행 시기에 스웨덴 법에 따라 모든 직원이 6주간 의무적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야 했고 공장도 폐쇄됐기 때문이다.

유럽 최대 배터리 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파산 위기를 맞았다. 폭스바겐과 골드만삭스 같은 큰손들이 자금을 대고 독일 정부 1조 원, 캐나다 정부 2조 원 등 막대한 보조금까지 챙긴 유망주였다. 잘못된 구매와 느슨한 노동 환경, 공정 관리 실패가 겹쳐 재앙을 불렀다. 턴키 방식으로 중국 ‘우시리드’의 설비를 깔았지만, 양국 작업자들끼리 영어로 소통하지 못해 엉망이 됐다. 스웨덴 노동 환경은 ‘너무도 인간적’이었고, 25세 대졸자가 생산 라인 관리를 도맡을 정도로 전문가가 부족했다. 형편없는 수율에다 공급 시한을 못 맞추자 BMW부터 2조 원대 납품처를 삼성SDI로 갈아탔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테네시 배터리 공장이 지난 6월 가동 한 달 만에 수율 90%를 달성한 대성공과 비교된다. 여기엔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LG엔솔이 2018년 완공한 폴란드 공장은 ‘아우슈비츠’라고 불렸다. 한국에서 파견된 엔지니어들이 3년 동안 피와 땀과 눈물을 갈아 넣으며 겨우 수율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소중한 경험과 기술 덕분에 인도네시아 공장은 가동 한 달 보름 만에 수율 90%를 넘었고, 그 뒤를 테네시 공장이 따른 것이다.

K-제조업은 창의성보다 이런 치열한 생산 관리가 경쟁력의 본질이었다. 재료 혼합 비율이나 온도가 조금만 달라도 수율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이 영혼까지 갈아 넣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확보한 경험과 기술이 지적 자산이자 경쟁력의 본질이다. 삼성전자는 2009년 ‘옴니아’ 실패로 스마트폰 위기가 닥치자 ‘독일 병정’ 최지성 대표와 ‘독종’ 신종균 부사장을 투입해 6개월간 돌관 작업 끝에 갤럭시 신화를 탄생시켰다. 만년 2위였던 SK하이닉스의 박명재 부사장도 “HBM(고대역폭 메모리) 성공은 15년간 구성원들이 피땀 흘려 쌓은 기술력의 결실”이라고 했다.

이런 K-제조업이 위기다. 미국의 초격차와 중국의 거센 추격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다. 중국은 세계 상위 1% 과학자가 1405명으로 미국(2507명)에 이어 2위다. 주요 학술지들의 임팩트 팩터(피인용 지수)를 마음대로 좌우할 만큼 고급 인재 보유국이 됐다. 여기에다 텐센트·알리바바 같은 기업은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6일 동안 일하는 것)이 관행이다. 시간 제약 없이 마음껏 연구·개발하면서 무섭게 치고 나가는 것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을 ‘제2 맨해튼 프로젝트(핵무기 개발)’로 지목해 압도적 초격차를 노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아예 “주 80시간 이상 일할 IQ 높은 인재를 구한다”는 구인 광고를 낼 정도다.

한국 경제는 2%대 성장률로 멀쩡하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속병이 깊다. 반도체·자동차·조선업종을 빼면 돈 버는 기업들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칩스법도 다 뒤집힐 조짐이다. 무엇보다 주 52시간 같은 경직된 제도 때문에 K-제조업이 본원 경쟁력을 잃어가는 게 문제다. 반도체 연구·개발자만이라도 제외하자는 반도체특별법마저 좌초될 위기다. 미국에는 10만7000달러 이상의 고(高)연봉자에 대해 근로시간 상한을 없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이 있다. 아예 머스크는 “주 40시간 일해 세상을 바꾼 사람은 없다. 주 80∼100시간은 일해야 한다”는 글을 X에 올린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던 신속한 의사 결정과 엔지니어들의 집중력이 예전 같지 않다. 자칫 스웨덴 같은 경직된 노동 환경에 발목 잡혀 한국판 노스볼트 재앙이 속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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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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