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문세 ‘마이 블루스’
유명인이 뜻밖의 행색으로 TV에 나오면 두보(712∼770)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제목은 ‘강남봉이구년(江南蓬李龜年)’. 해석하자면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났다는 뜻이다. 도입부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인데 당나라에서 힘깨나 쓰던 인물들이다. 시인 두보와 가수 이구년은 이들의 잔치에 자주 초대됐다. 하지만 화양연화로 시작한 시는 결국 낙화시절로 끝맺는다. ‘꽃 지는 시절에 또 너를 만날 줄이야(落花時節又蓬君)’
이 시를 직무수행(섭외) 중 인용(활용)한 적이 있다. 1991년 가을 송창의 PD 후임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연출을 맡았는데 당시 최고의 MC 주병진이 동반 사퇴를 선언해버렸다. 나로서는 비상사태였다. 하지만 ‘닭 쫓던 개’도 믿는 구석은 있는 법. 당시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상종가를 치던 이문세를 매일 밤 스튜디오로 찾아가 설득했다. “라디오는 ‘별밤’, TV는 ‘일밤’ 당신은 밤의 황제로 등극할 수 있다.” 그러나 응할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게 하던 그는 녹화 열흘을 앞두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라디오와 노래에 전념할래요.” 실연(?)당한 PD는 최후변론을 인문학적으로 했다. ‘강남봉이문세’ 그래 두고 볼 거야.
그 후 33년을 두고 봤는데 이문세는 요지부동이다. 한편 절망적 상황에 놓인 PD에게 상큼한 청년의 미소가 떠올랐다. 드라마 ‘서울 뚝배기’로 호감을 산 최수종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최수종 아닌 최종으로 읽으며 수소문해서 그의 집(당시 과천아파트)으로 찾아갔다. 예고 없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나타난 PD가 안쓰러웠는지 어머니는 아들을 움직여보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PD의 인내심과 배우의 효심이 ‘일밤’을 위기에서 구해냈고(물론 이경규의 혁혁한 기여가 뒷받침) 1993년 이문세는 최수종 후임으로 ‘일밤’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문세와 주병진은 나이도 경력도 엇비슷하다. 이문세는 1978년 CBS라디오 ‘세븐틴’의 DJ로 데뷔했고 같은 해에 주병진은 제1회 TBC해변가요제에 친누나(주선숙)와 함께 출전해서 ‘속삭여 주세요’를 부른다. 40년 후 ‘복면가왕’(2018년 6월 13일 방송)에 나와 ‘수십 년 전 살던 동네에 다시 와보니 동네가 많이 달라졌네’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동네는 중의적이다. 자신이 활동하던 방송사(MBC) 혹은 처음 발을 디뎠던 음악동네일 수도 있다. 요즘 리얼리티 예능 ‘이젠 사랑할 수 있을까’에 출연해서 배우자를 찾던데 만약 성사된다면 신랑은 자신의 데뷔곡을 축가로 불러도 좋을 성싶다. ‘우리는 행복한 사랑에 영원한 꿈을 꿀 거야’(‘속삭여 주세요’)
‘노랫가락 차차차’(원곡가수 황정자·1960)에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라는 가사가 나온다. 열흘 붉기가 어려운 꽃밭에서 이문세는 또 신곡을 발표했다. 이번엔 자작곡이다. ‘어차피 발버둥 쳐도 인생은 가는 거 누구나 가는 그 길 꽃잎 하나 떨어지네’(이문세 ‘마이 블루스’) 중간에 독백(‘노래 한 곡 부른 거 같은데 나는 무대 위에 혼자 서있네 한숨 한 번 쉰 거 같은데 내 머리 위엔 하얀 눈이 쌓여있네’)이 들어있어선지 마치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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