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작 소설 ‘모우어’ 출간한 천선란 작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
욕망만 대변하다 멸종 위기
‘자멸의 길’ 걷는 인류 그려
“獨 체류때 느낀 언어의 벽
냉혹한 ‘디스토피아’ 체험”
대표작 ‘천 개의 파랑’으로 해외 대형 출판사로부터 ‘억대 계약’을 이끌어냈던 소설가 천선란이 2년 만에 세 번째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로 돌아왔다. 문화일보에서 최근 만난 천 작가는 “원래 2026년까지 소설집을 묶지 않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소설이 빠르게 쌓이다 보니 단행본 출간이라는 마감까지 정해두고 더 몰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사람답게 소설집으로 묶인 8편 소설의 절반가량은 캐나다, 독일, 태국 등을 방문하던 중에 완성됐다. 심지어 소설집의 맨 앞에 실린 ‘얼지 않는 호수’와 표제작 ‘모우어’는 소설집을 묶기 위한 단편 선정이 끝난 후 외국에서 떠오른 영감을 포착해 뒤늦게 추가한 미공개작이다.
한국어, 영어처럼 모우가 사용하는 말인 모우어(語)는 언어를 둘러싼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을 더욱 잘 이해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던 언어가 오히려 인간의 욕망만을 대변하게 되며, 멸종의 위기를 겪은 후 남겨진 인간들의 모습을 그린다. 언어를 폐기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세상은 본 적 없던 디스토피아다. 천 작가는 모우어에 대해 “독일에 체류하던 기간 쓴 작품”이라고 말했다. “또래의 독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언어가 가지는 힘과 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자신들의 말이 민족을 학살한 나치도 쓰던 말이라는 점을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은 충격을 줬어요.”
이뿐만 아니라 ‘얼지 않는 호수’에서는 너무 피폐해진 지구 환경에서 식인까지 일삼아야 하는 배경을, ‘너머의 아이들’에서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인류가 어린아이만을 고르고 냉동시켜 우주에 내보내는 상황을 그린다. 이처럼 작가는 8편의 모든 단편에 냉혹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한껏 발휘했다. 천 작가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는 것이 내게는 마치 새로운 우주에 떨어진 듯한 경험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고독감과 이질감, 몰이해 등의 새로운 감정들이 그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그가 이번 책에서 직조해 낸 세계들의 공통점은 인류가 스스로 재앙을 초래해 자멸의 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천 작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멸종의 위기란 기후 재앙으로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지켜보고 있자면 하룻밤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커졌다”고 말했다. 또한 종말에 대해선 “문명을 발전시키고 누리던 일에서 다시 원시인류처럼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이미 종말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종의 다양성은 줄어들고 인류만 넘쳐나기에, 우리는 오늘도 망해가는 중”이라는 천 작가의 말처럼 각종 위기는 인류의 내일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이런 세상에서 소설가들은 치사한 방법으로 불안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마이크를 잡고 세상을 구하자고 외치지는 못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아요.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가 너무 두려워 세상을 돌려세워야 하는데, 소설을 쓴다는 건 여러 겹의 포장지로 세상을 감싼 채 ‘봐, 무섭지?’ 하며 보여주는 게 다죠.” 그러나 그가 만들어낸 세상은 결코 완전한 멸종으로 마침표를 찍지는 않는다. 서로에 대한 이해로서 희망을 보여준다. 외톨이, 초능력자, 심지어 로봇까지도 본인을 이해해줄 수 있는 대상을 만나 기존에 알던 가족이나 친구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로 변해 멸망한 세계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한편 요즘의 일상을 묻자 천 작가는 “마감” 두 글자를 말하곤 웃었다.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인 만큼 지금은 중국과 한국의 작가들이 비슷한 주제를 놓고 함께 쓰는 앤솔러지에 참여 중이다. “내년에는 새로운 장편소설 두 편도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최종적 목표라고 하면 ‘헝거게임’ ‘메이즈 러너’처럼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오랫동안 독자와 출판사, 문단을 설득해야죠. 지금까지는 스스로에게 성공적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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