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백악관 비서실장에 지명된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트럼프 당선인이 도착한 테네시 내슈빌 국제공항에 서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으로부터 백악관 비서실장에 지명된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7월 27일 트럼프 당선인이 도착한 테네시 내슈빌 국제공항에 서 있는 모습. AP 연합뉴스


■ Leadership - 미국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 기용된 수지 와일스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플로리다 총괄해 승리 크게 기여

온화한 성품… 필요할 땐 쓴소리
집무실 통제 ‘문고리 권력’ 자처

알코올중독·폭력 일삼던 아버지
감동적 편지로 재활치료 받게 해
“기능장애 가진 유명한 남성 전문”


워싱턴=민병기 특파원 mingming@munhwa.com

“이번 미국 대선은 와일스가 오맬리 딜런과의 싸움에서 한판승을 거둔 것이다. 와일스가 없었다면 트럼프 캠프는 이 정도로 질서정연하지도, 체계적이지도, 창의적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워싱턴 정치판에 잔뼈가 굵은 한 인사가 이번 미국 대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승리 요인을 평가한 말이다. 트럼프 캠프의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수지 와일스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 선거에도 관여했던 젠 오맬리 딜런 백악관 부비서실장(카멀라 해리스 캠프 선대위원장)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했다는 뜻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선거운동이 해리스 부통령보다 훨씬 나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에 기용된 와일스 선대위원장은 냉정한 전략과 강력한 추진력, 실무 능력과 지도력을 동시에 갖춘 ‘외유내강’형 리더로 꼽힌다. 트럼프 당선인을 백악관으로 이끈 그는 이제 스스로 ‘문고리’를 자처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진용을 이끌게 됐다. 연방 의원이나 내각 고위직 경험도 없이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를 거머쥔 와일스, 트럼프 2기의 성공 여부를 따질 때 “와일스가 얼마나 실권을 쥘 수 있느냐에 달렸다”(24일(현지시간) 한 미국 민주당 관계자)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외유내강형의 ‘얼음 여인’ = 1957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와일스는 메릴랜드대를 졸업한 뒤 1979년 공화당 하원의원 잭 켐프 의원실의 참모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어 1980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뒤 백악관에서 일정 담당을 맡았다. 이후 선거 현장을 누비던 와일스가 본격적인 ‘킹메이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은 2010년 플로리다 주지사선거부터다. 릭 스콧 주지사의 선거운동을 총괄하며 승리로 이끈 와일스는 2015년 대선에 출마한 트럼프를 처음 만난 뒤 트럼프 캠프에 면접을 거쳐 합류했다. 당시 그는 친구들에게 “그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와일스는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플로리다주 공화당 선거운동을 총괄해 트럼프 당선인이 플로리다에서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2018년에는 론 디샌티스 주지사 선거운동에 구원투수로 투입돼 승리로 이끌었지만 이후 ‘팽’당했다. 2020년 재선에 도전하던 트럼프 당선인은 다시 와일스를 불렀고 와일스는 2020년에도 트럼프 당선인의 플로리다 경선 승리를 이끌었다.

와일스는 2020년 트럼프 당선인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에도 곁을 지켰다.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했고, 이때부터 트럼프 당선인이 가장 신임하고 경청하는 참모로 평가됐다. 와일스는 2021년 트럼프 당선인을 위한 정치자금 모금단체 ‘세이브 아메리카’ 팩(PAC)의 CEO를 맡으면서 팩 자금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법률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트럼프 당선인은 주변에 “수지가 이제 책임자가 됐다”고 말했다. 한 번도 무대에 올라본 적이 없는 와일스는 그렇게 조용히 트럼프 당선인 곁을 지키며 그를 승리로 이끌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당선 감사 연설에서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무대 위로 불러 치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6일 플로리다주 팜비치 컨벤션센터에서 가진 당선 감사 연설에서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무대 위로 불러 치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6일 승리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연단 아래에 있던 와일스를 연단 중앙으로 불러 치하했다. 수면 아래 있던 와일스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는 그녀를 ‘얼음 여인’(ice maiden)이라고 부른다”며 “수지는 뒤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뒤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와일스의 면모는 이 순간에도 드러난다. 연단에는 함께 섰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그의 이름을 7번이나 부르며 발언을 요청했음에도 끝내 사양했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와일스가 트럼프 당선인의 가장 중요한 참모이고, 모든 것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없다고 보도했다. 또 와일스가 사진에 찍혀도 늘 배경으로 있고, 언론에 실명으로 발언하는 적이 거의 없으며,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경우는 그보다 더 드물다고 전했다. 와일스는 늘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험한 말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사람 좋은’ 스타일은 아니다. 이번 대선 캠프에서도 “자아(ego)는 문밖에 두고 오라”고 경고하고 대통령 전용기 탑승자의 명단도 일일이 체크하는 등 얼음같이 냉철한 면모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주변의 인물 중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썼다. 전직 동료들은 와일스의 능력에 대해 전략적이고 지지를 모으는 데 능숙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 인재를 발굴하고 의미있는 역할을 부여하는 데도 탁월하다고 했다. 한 인사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접근하기 쉽지만 권위가 훼손되지 않는 인물”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문고리’ 자처한 와일스 = 복수의 캠프 관계자들을 인용한 폴리티코는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와일스가 유능하고 일을 잘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와일스는 우선 자신이 맡은 조직에 대한 통제가 확실하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2016년, 2020년에 비해 전문적이고 조직적인 선거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와일스 덕분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와일스는 스스로가 실명 인터뷰를 자제하듯 캠프 내 논의나 결정 사항이 공식 경로가 아닌 경로로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았다. 겉보기에는 할머니 같은 인상을 주지만 캠프 내부는 체계적으로 통제했다. 그렇게 조직을 추스른 와일스는 트럼프 당선인과 이견이 있을 때는 이를 에둘러 표현하는 데 능숙했다고 한다. ‘에고’가 매우 강한 트럼프 당선인을 감안, 그의 판단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완곡하게 표현하는 데 능하다. 폴리티코는 와일스를 잘 알면서 트럼프 당선인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던 이들의 표현을 인용, 와일스가 트럼프 당선인이 최악으로 가는 것은 막아줄 것이라고 썼다. 와일스를 마냥 ‘충성파’로만 분류할 수 없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와일스의 스타일을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와일스의 아버지 팻 서머럴은 미식축구 선수였는데, 알코올 중독자로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였다. 와일스는 아버지에게 보낸 감동적인 편지를 통해 서머럴이 재활 치료를 받도록 했고, 한참 뒤 서머럴은 자신의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이 겪은 고통에 대해 후회하며 그로 인한 가족과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이를 두고 폴리티코는 와일스의 지인을 인용, “그녀가 트럼프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버지를 다루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라며 “그녀는 불안정하고 기능 장애가 있는 유명인 남성의 전문가”라고 보도했다.

CNN은 와일스가 비서실장 수락 조건으로 트럼프 당선인에게 ‘누가 집무실에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지 자기가 통제하겠다’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스스로 ‘문고리’ 권력을 자처한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와일스의 의지가 실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관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자진 사퇴한 맷 게이츠 법무장관 지명자 등 논란이 된 몇몇 인사의 경우 와일스가 발표 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나 트럼프의 아들들 등 와일스의 ‘통제’를 벗어난 이들과의 관계 설정도 관건이다. 트럼프 당선인을 둘러싼 권력 다툼에서 와일스가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느냐, 이게 미국 정치 역사상 최초의 여성 비서실장이 살아남느냐의 관건이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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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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