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우의 Deep Read - 한동훈 위기의 본질

비전·도덕성·소통 부족에 ‘당게 사태’로 진실성 훼손… 尹과의 건설적 차별화도 실패
지지층 이탈·항의의 정치 독법 중요… 대통령과 견제·협력 속 국정 공동책임 역할 찾아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 위기는 급작스레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한 대표의 불안한 리더십은 22대 총선 참패 후 조기 당권 도전 때부터 잠재된 것이었다. 현재로는 리더십을 강화해 조직을 통합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위기 극복의 묘안이 잘 보이질 않는다.

◇취약한 리더십

한동훈 대표의 리더십 위기는 한국의 정치문화에서 출발한다. 우리 정치에서 정당 지도자의 자질은 대선 후보의 잠재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사실상 독점해온 정치문화의 유산이기도 하다. 아무리 평판이 좋은 정치인도 대권 도전 가능성이 없다면 중앙정치에서 주목받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 대표에 대한 리더십 위기를 진단하는 문제는 차기 대선과 맞물려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권력인 대통령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문제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여당 대표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종종 임기 말에 탈당을 요구받기는 하지만, 차기 대선에 미치는 영향력과 지배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 대표의 갈등 관계는 예외적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 대표는 7·23 전당대회 승리로 당 대표에 취임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 윤석열 대통령과의 건설적 당정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다. ‘국민 눈높이’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한 대표가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최근 ‘당원게시판(당게) 사태’에 대한 대응은 한 대표의 위기 대처 능력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윤 대통령 부부를 비방한 글을 올린 사람으로 의심받는 가족에게 확인해 진실을 밝히고, 필요하면 당원과 국민에 사과하는 정직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진실성(integtity)을 훼손했다.

2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한 대표와 김민전 최고위원이 ‘당게 사태’를 놓고 공개 언쟁을 벌였다. 한 대표의 리더십 취약성은 내적으로는 당을 장악하지 못하고 외적으로는 중도 확장은커녕 보수 규합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11월 1주)에 따르면 한 대표는 당 대표 피선 후 줄곧 하향 추세를 나타냈고, 최근 조사에서 14%에 그쳤다.



◇자기증명 부재

정치지도자에게는 끊임없는 ‘자기증명’이 요구된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한 대표의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일관되게 자신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특히 도덕적 이슈에 대해서는 위법성 여부를 떠나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요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당게 사태’와 관련한 한 대표의 회피성 발언이나 태도는 사이다가 아닌 고구마에 가깝다. 당 대표 취임 후 그의 정치적 발언은 성과라는 측면에서 국민에 각인된 것이 거의 없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경향적 저하 흐름을 보이면 통상 여권의 차기 권력(유력 대권 주자)은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선다. 하지만 국민은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일찍부터 대안을 도모하지 않았던 여당이 급작스레 대통령과 차별화를 도모하는 것에 감동하지 않으며, 대선 승리 전략쯤으로 치부할 뿐이다.

한 대표가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를 계획한다면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첫째, 대통령을 설득해 임기 전반기와는 달리 민심을 반영하는 국정 운영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둘째로, 제대로 된 민심 전달을 위한 ‘여권 내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 한 대표는 둘 다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 대표가 대통령과의 성급한 차별화를 꾀하는 것도, 거꾸로 대통령과의 우호적 관계 개선에만 주력하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6 대 3’가량의 비율을 보인다. 올해 초 여당 비대위원장 취임 직후만 해도 ‘총선 후 김 여사 특검’ 등 대안을 공언했던 한 대표는 대통령과의 조기 차별화에 따른 여권 공동추락을 경험한 후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뚜렷한 리더십 한계를 보이는 중이다.

◇탈퇴·항의·충성

대권 도전의 길은 결코 편하고 안전할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①비전과 도덕성과 소통 능력 강화 ②대통령과의 건설적 차별화 ③보수 통합을 통한 정치 혁신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차기 대권 주자로서 지지층의 관심과 기대는 점차 줄어든다.

앨버트 허시먼의 저작 ‘탈퇴, 항의 그리고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의 부제는 ‘퇴보하거나 독재적으로 변하는 조직 또는 국가에 대한 대응’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당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직원은 불만이 있을 때 이탈(exit)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voice)할 수 있다. 더러는 조직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회로를 돌리면서 잔류할 수도 있다. 조직에 불만이 있을 때 어떤 대안을 선택할지는 구성원 개인의 충성심(loyalty) 정도에 달려 있다.

이탈은 곧 정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말하는데, 이는 대체재가 있을 때 강해진다. 거대 양당이 권력을 독점하고 정치 양극화가 심화한 현재의 정당체제는 지지자의 이탈을 억제한다. 국민의힘 지지층은 더불어민주당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이탈 대신 잔류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에 항의하는 것은 충성심을 기초로 한다. 미련 없이 떠나기보다 개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구성원의 활성화된 참여를 의미한다. 하지만 만일 항의하는 집단이 구성원 중 극히 일부만 대변한다면 그 정당은 항의자 중심 조직이 된다. 이 경우 당은 극단적이 되고 중도 확장성이 사라진다.

정치 리더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결단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상황 논리에 따르지 않고 원칙에 충실하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는 동시에 실천이 있어야 한다. 사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때론 자기희생적 결단을 내릴 때 대중은 감동하고 지지를 보낸다.

◇한동훈의 과제

이 같은 리더십 관점에서 보면 한 대표는 윤 대통령 정부와 견제와 협조라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가면서, 여당이 대통령의 통제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정의 공동책임자 역할을 하도록 당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대통령과의 충돌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여권의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옮아가기 위한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그 토대는 국민의 신뢰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 설명

‘당게 사태’는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부인·장인·장모·모친·누이·딸과 같은 이름의 아이디로 대통령 부부에 대한 악성 비난 글들이 올라왔던 것. 친한 대 친윤 간 갈등 소재가 됨.

‘앨버트 허시먼’은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독일 출신의 미국 경제사상가.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시장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아 세계 속으로 걸어간 개발경제학자로 칭함.

■ 세줄 요약

취약한 리더십 : 한동훈 대표가 정치적 위기에 직면.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지만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특히 ‘당원게시판 사태’에 대한 대응은 한 대표의 위기 대처 능력을 의심하기에 충분했고 진실성을 훼손.

자기증명 부재 : 정치지도자에겐 끊임없는 ‘자기증명’이 요구됨. 한 대표는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도, 제대로 된 민심을 전달하는 것도 실패. 대표 취임 후 성과라는 측면에서 국민에 각인될 만한 것을 보여주지 못했음.

탈퇴·항의·충성 : 허시먼의 저작에 나오는 ‘탈퇴·항의·충성’을 둘러싼 지지층의 마음을 읽는 정치 독법이 중요. 정치 리더십은 결단에 의해 얻어지는 것. 한은 대통령과 견제·협력 속에 국정 공동책임의 역할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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