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못한 상황이 더 큰 충격파 역사에도 ‘검은 백조’ 수두룩 신라 -당나라 동맹이 전쟁 비화
파병 대가 놓고 러- 북 충돌 가능 러시아에 김정은 위험 알리고 한·중 전략대화 테이블 올려야
러시아와 북한이 확률은 낮겠지만, 무력 충돌할 수도 있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외국 군대를 끌어들이는 약소국 행태를 보이면서, 김정은에게는 북한 병사의 급료와 사망보상금이라는 든든한 충성 자금줄이 생겼다. 그가 ‘김주애의 나라’를 만들어 주려면, 노동당 금고를 꽉 채워놔야 하는데, 만일 러시아 당국이 파병 대가의 지급과 계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김정은은 절대 빈손으로 철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가능성이 큰 전망을 하고, 가능성이 작은 얘기는 헛소리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도 통계적으로 정상분포 영역 밖에 있는 극단치는 분석에서 제거해 버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도 발생할 수 있고, 그 경우 초래되는 결과는 엄청나고 충격적이다. 이것이 상식 밖의 일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검은백조 이론’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 같은 사건은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후에 많은 설명이 쏟아졌다. 이처럼 충격적인 사건의 경우 사후분석은 쉽지만 예측이 어렵고,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발생 확률이 낮은 사태에도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2023년 6월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용병에 대한 공중 지원과 보급의 차질을 문제 삼아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바그너 그룹은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름 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할 때 만들어졌고, 이후 중동과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투입됐다. 주로 전직 특수부대원을 모아 소규모 작전을 수행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정규군이 고전하자 감형과 보상을 조건으로 약 5만 명의 죄수를 충원해 대규모 부대로 탈바꿈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공격의 주축을 맡은 바그너 그룹은 전쟁 와중에 러시아 국방부와 갈등을 빚었다. 푸틴의 측근이었던 프리고진은 수하 용병들의 무자비한 전투로 성과를 거두자, 국방부의 견제를 받았고 지휘권 문제로 갈등했다. 죄수 병사들은 훈련과 보급이 미진한 상태에서 최전선 돌격대로 나가 총알받이가 되거나, 적의 대포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미끼로 활용됐고, 그들의 희생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 외면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과 미국은 나치독일에 대항해 함께 싸웠지만, 독일의 항복 직후부터 지금까지 싸우는 양국은 전승절도 하루 차이로 따로 기념한다. 러·북 전쟁 시나리오와 가장 유사한 역사적 선례는 나당전쟁이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위해 당나라에 파병을 요청했고, 대동강을 기준으로 정복지를 나눠 갖기로 밀약했으나, 당이 영토 야욕을 보이자 연합을 깨고 연천 매소성전투에서 당군을 북으로 밀어내고, 금강 하구 기벌포전투에서 서해로 몰아냈다.
러·북 전쟁 가능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러시아 정부에 프리고진의 교훈을 일깨워줘야 한다. 모스크바로 통하는 모든 채널을 가동해, 대북(對北) 핵·미사일 개발 지원이 러시아의 심장부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야 한다. 북한이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확보하게 되면 모스크바도 타격권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나당전쟁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중국에도 외교 공세를 펼쳐야 한다. 중국은 러·북 군사 협력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경제성장에 유리한 안정적인 안보 환경을 추구하기 때문에 북한이 역내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핵 사용 금기를 깰 수 있는 북한을 위해 핵 역량을 키워주는 일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간주한다. 중국의 부상이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평화 질서를 책임지는 대국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으로서는 러·북 군사 협력에 개입할 책무가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60%를 공언하는 등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하다고 느끼고 최근 한국 여행자에 대한 무비자 정책과 시진핑 주석의 방한 협의 등 한국에 협력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이런 협조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러·북 문제를 한·중 전략대화 테이블에 올릴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중국을 러시아 설득에 유용한 소통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