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 영케어러 지원 ‘가족과 나를 돌보는 행복한 성장’
가족돌봄아동 불안감 호소 많아
가사지원에 더해 문화체험 제공
일상 벗어나 기차여행·공연관람
하고 싶은 것 찾으며 진로도 꿈꿔
참여학생 “학교 생활서도 자신감”
15세 김진영(가명) 군은 찌개 끓이기가 주특기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운 어머니와 수년 전 계단에서 넘어져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돌보느라 가사를 도맡으면서 어린 나이에도 청소·빨래·식사 준비에 능하다. 김 군은 가족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다. 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고, 학교에 있는 시간 외의 대부분을 집안일과 간병에 할애하고 있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16세 박하은(가명) 양도 어린 나이지만 몇 년째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다. 어머니가 박 양과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돌봤지만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박 양은 맏이로서 식사 준비, 빨래, 청소 등을 하고 어머니의 병원길에 동행한다. 그런데도 학업 성적이 우수한 박 양은 친구들에게 ‘또래 선생님’으로 통한다. 교내에서 봉사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박 양은 “우리 가족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커서 사회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초록우산에 따르면 초록우산은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올해 2월부터 11월까지 이들과 같은 ‘영케어러’(Young Carer·가족돌봄청소년)를 돕는 ‘가족과 나를 돌보는 행복한 성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족돌봄아동은 신체적·정신적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가족 구성원을 돌보며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아동·청소년을 아우르는 말이다. 협회는 경제·심리적 문제로 학업과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돌봄아동을 선정해 심리 상담뿐만 아니라 계절에 맞는 옷 구입, 장보기 교육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초록우산의 영케어러 지원 사업은 2021년 아버지를 간병하다 살인을 저지른 22세 청년의 ‘대구 간병 살인’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가족돌봄아동·청년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2022년 초록우산이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만7~24세 14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6%(686명)가 가족돌봄아동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5명 중 3명은 중·고교생, 1명은 초등학생이었다. 또 이들 중 절반이 넘는 346명은 1년 이상 가족을 돌보고 있었으며, 5년 이상도 28.3%에 달했다.
가족돌봄아동들이 나이와 관계없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심리·정서적 불안이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때도 돌봄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생각하면서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한국은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현황 파악조차 구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족돌봄아동까지 더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서 아동·청소년이 마땅히 누려야 할 ‘놀 권리’와 적정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가족돌봄아동 지원 사업을 통해 이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사활동과 가정 내 어려움으로 경험해보지 못했을 문화체험활동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그 덕분에 지원 대상 아이들은 돌봄노동에서 해방돼 직접 여행을 계획하고 처음으로 기차를 타며 휴가를 만끽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협회는 미술관 체험, 낚시, 마술공연 관람, 물놀이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영케어러 이수현(가명·15) 군은 “초록우산 가족돌봄아동 사업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진로에 대해 고민해볼 여력이 없었다”며 “올해는 학교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원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해보면서 조금씩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지영(가명·15) 양도 “아픈 가족이 있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한 번도 마음 놓고 이야기해본 경험이 없었다”며 “초록우산 사업 덕분에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참여 소감을 전했다.
가족돌봄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학교 사회복지사 A 씨는 “아이들의 가장 큰 변화와 성과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것을 경험한 아이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고 학교생활에 대한 적응력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 사회복지사 B 씨도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평범한 가정의 아이들처럼 가족돌봄아동에게 다양한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건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전했다.
협회 사업담당자는 “참여 아이들의 의견이 존중받고 아이들이 중심이 된 프로그램으로 구성하려 노력했다”며 “아이들이 지원 사업을 통해 심리적 지지를 얻고 자신감을 회복해 향후 진로 계발이나 또래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 erase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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