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잘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집에서 엄마밥 편하게 먹고, 내신 잘 받는 게 훨씬 낫다. 뭐하러 날고뛰는 애들 몰려드는 도회지 학교에서 비싼 돈 써가며 어려운 길을 가려 하니. 너 퇴학 맞을 뻔한 것 내가 정학으로 감경해줬잖아. 너는 은공도 모르냐.”
도회지 학교로 가는 시골학교 전교 1등 학생을 붙잡으려는 교장선생님의 말을 가상으로 적어봤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퀄리파잉(Q)스쿨 도전에 나서는 국내 1인자 윤이나의 상황이 이와 비슷한 것 같아서다.
2024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3관왕을 차지한 윤이나가 이번 주 LPGA투어 Q스쿨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다.
윤이나의 미국 진출을 두고 골프계 안팎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오구플레이 징계를 3년에서 1년6개월로 절반 줄여줬으니 감경받은 기간만큼이라도 국내에서 더 뛰며 ‘보은(報恩)’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꽤나 많다. ‘먹튀’라는 과격한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니 윤이나도 “Q스쿨에 합격해도 내년부터 미국에서 뛸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며 적잖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역력하다.
윤이나의 미국 진출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도의’를 내세우지만, 그 바탕에는 선수에 대한 ‘사감(私感)’이 먼저 깔려 있다. 오구플레이 이후부터 그에게 ‘주홍글씨’를 새긴 사람들이 여전하다. 같이 투어를 뛰는 동료 선수들 내에서도 윤이나와 거리를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여기에 KLPGA의 이기주의도 빼놓을 수 없다. KLPGA가 윤이나에게 감경 조치를 해준 것은 봉사활동 등 이행 조치를 충실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흥행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란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호쾌한 장타와 날카로운 아이언샷으로 많은 국내 팬을 확보한 윤이나의 해외 진출이 달가울 리 없다. 이미 국내 개최 LPGA 대회에 KLPGA 선수가 출전하면 10개 대회 출전금지와 1억 원 이하 벌금이라는 조치를 하고 있지 않은가. KLPGA는 한국여자골프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든다는 오랜 비판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한때 세계 최강 한국여자골프는 계속 추락하고 있다. 25일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을 끝으로 막을 내린 LPGA투어 2024시즌에서 한국은 3승을 합작했지만 13년 만에 시즌 최소 승수를 기록했다. 한국 선수들은 또 LPGA투어 올해의 선수, 상금, 신인상, 평균 타수 등 주요 부문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아직 윤이나가 Q스쿨을 통과한 것도 아니고, Q스쿨 통과 이후에 바로 LPGA투어에 진출할지도 정해진 것은 없다.
드라이버 비거리, 볼 스트라이킹·쇼트게임 능력, 멘털 등 여러 면에서 LPGA 무대 세대교체와 한국여자골프 부흥을 이끌 선수로 윤이나가 적격이라는 평가가 많다. 윤이나가 적지 않은 상금과 편안함을 뒤로하고 이동 거리도 길고, 비용과 언어 문제 등 국내 대회와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도 도전하는 것에 응원을 보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혼동하지 말자. 한국여자골프와 KLPGA는 같은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