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3국인 한국·일본·중국은 1인당 농경지 면적이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다. 역사적으로 영세 소농 구조가 지역적 특색이다. 이처럼 좁은 경지로 비교적 큰 규모의 국민을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 농업 비중이 매우 크다. 지난 초여름, 3국은 신(新)농업정책 도입을 위해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세 나라는 공통으로 법률을 통해 농업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 유도를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일·중은 법률 정비를 마치고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은 ‘식량·농업·농촌기본법’을 제정한 지 25년 만에 완전히 뜯어고쳤고, 중국은 ‘식량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이렇게 두 나라는 농업이 나아갈 미래 방향을 설정하느라 바빴다. 반면, 한국은 정부 매입을 통한 가격지지라는 흘러간 정책 수단 재도입 여부로 분주했다. 마침내 지난 21일 양곡법을 포함하는 주요 농업법을 야당 단독으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의결함으로써 정부·여당과의 대치 상황이 이어진다.
일·중 양국은 법률 제·개정으로 자국 농업자원 보전과 농업생산 역량을 강화해 식량 공급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농업 증산 기반 구축을 시도했다. 이렇게 일·중은 기후변화, 국제 공급망 경색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농업의 근본 틀을 재조정하는 데 국가 역량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3국 중 식량안보 기반이 가장 취약한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용도 폐기한 정부 주도 가격지지 정책을 둘러싸고 국가 역량을 허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농가 소득·경영 안정, 농업 발전 등 어떤 명분으로도 정부 주도 가격지지는 이 시기에 쓸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시행하다 유용성을 잃었다고 판단해 폐지했다. 세계가 효과성을 잃었다고 검증·평가한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국가 위상에 맞지 않는다. 농업자원의 효율적 활용, 품목 간 균형을 통한 식량안보 기반 구축, 자기책임 기반 농업인의 위험관리 능력 배양, 농업인 소득·경영 안정 기반 확충 등 미래 농업정책 방향과도 동떨어진다.
정부는 최근 민간 전문가와 농업인 단체 등이 참여해 마련한 ‘한국형 농업인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농업계에서 광범위하게 관심을 보인다. ‘농업수입안정보험’을 근간으로 하면서 ‘공익직접지불제도’ 확충, ‘선제적 수급관리’ ‘재해대책’ 등을 결합해 종합적인 농업인 소득·경영 안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회 야당의 협조를 받지 못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농업수입안정보험 예산 2078억 원을 959억 원 수준으로 대폭 삭감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예산을 회복하지 못하면 정책 추진은 차질을 빚는다. 야당 독주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농업인의 자기책임 기반 경영위험관리를 강조하고, 농업인의 선택과 참여를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세계 농업정책의 방향이다. ‘한국형 농업인 소득·경영 안전망’은 이를 잘 반영했다. 야당이 상임위에서 단독 의결한 법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망법(農亡法)’이라 했다. 설마 농업을 망하게 할 의도야 있을까만, 지금 같은 야당 독주가 계속된다면 우리의 농정과 농업은 후퇴할 것이다. 이웃 국가와 세계의 흐름을 보면서 농업의 미래를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