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트럼프의 유아독존 권위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공감대
과거 권위주의 토양은 소외감

최근엔 공유 규범 붕괴 불안감
내부의 적 물리칠 리더십 선호
한국에도 유사한 조짐 빨간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승으로 끝난 11·5 미 대선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란 구호가 먹힌 데다가 민주당 쪽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싫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거였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부상과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과 같은 문제가 당장 한국 경제 및 외교에 끼칠 부정적 영향과 함께, 어떻게 트럼프와 같은 유아독존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이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당선되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미국의 지식인층 역시 그와 같은 인물의 부상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이제 3대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스트롱맨’이 집권했다. 이 가운데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 등장한 권위주의의 배후에는 다른 심리가 존재한다. 과거에는 권위주의 리더의 등장을 카리스마형 리더를 넘어선 ‘개인숭배(cults of personality)’ 현상으로, 이들의 추종자들이 병리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나 아렌트는 이런 추종자들의 심리가 ‘원소화(atomization)’, 즉 주류사회와 격리돼 있다는 소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했다. 자신이 하나의 원소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높은 사람들끼리 대중(mass)을 이뤄 권위주의 체제의 형성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존 이론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권위주의를 추종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 성향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심리학자 카렌 스테너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에 순응하고자 하는 심리와 이에 맞서 개인적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려는 심리 모두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반되는 두 가지 심리 간의 균형이다.

그런데 개인주의 과잉에 따른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한 사회를 지탱하는 공유하던 ‘규범적 질서’가 붕괴될 위협을 느끼게 되면 이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심리적 욕구가 일어난다. 그 결과물로 권위주의가 부상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즉, 개개인의 상이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허용하는 다원적 문화성이 임계치를 넘게 되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 주류 세력들이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원래 공유해 온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복원시킬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민자들이나 동성애자 등 소수 집단들을 이러한 가치관 붕괴를 가져온 ‘내부의 적’으로 인식하면서 다시 다수의 응집력을 도모하기 위해 스트롱맨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는 동일한 가치관이나 정체성을 공유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같이 과거의 영화를 되살릴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심리적 결과물이 이번 트럼프 대선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전쟁배상금 문제로 초토화됐던 독일에서 ‘그 무엇보다 독일’을 외쳤던 빌헬름 2세의 재림이라고 평가받았던 아돌프 히틀러가 집권하게 된 이유와도 유사하다. 그러고 보면 연설의 달인이었던 히틀러가 대중연설 때 청중의 긴장감을 높이려고 일부러 몇십 분씩 늦게 도착한다거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상회담에서 상대의 기를 꺾으려고 의도적으로 몇십 분씩 늦게 입장하는 거나 닮긴 닮았다. 또한, 트럼프가 외치는 미국 우선주의 역시 묘한 기시감을 준다.

스트롱맨은 유사시 위기를 돌파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는 분명히 강점을 지닌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헌법을 우선해 자신이 곧 법이라고 생각할 만큼 제어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트럼프가 ‘나는 전사(warrior)이며 내가 정의(justice)다. 나를 부정하고 배반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이 곧 응징(retribution)’이라고 강변한 게 이것이다.

정치적 대립이 날로 첨예화하고 그 와중에 경제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현 우리 사회 역시 이러한 초법적 스트롱맨 리더십이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DGIST 석좌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