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동 전 기상청장
유희동 전 기상청장


■ 기고 - 유희동 전 기상청장 (연세대 특임교수)

지난 20일 연세대학교가 송도 국제캠퍼스에 설치한 IBM 양자컴퓨터 ‘퀀텀시스템 원’을 공개함으로써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 양자컴퓨터를 가동했다. 한국은 양자컴퓨팅 기술에 있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일부 국가에 비해 후발 주자이다. 하지만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가는 ‘양자 과학기술 및 양자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을 바탕으로 하는 제도 마련과 함께 이번 상용 양자컴퓨터 가동으로 양자 컴퓨팅 분야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걸음을 시작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와는 처리 성능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막강하다. 연세대가 가동을 시작한 127큐피트 성능은 2의 127승 연산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성능으로 우주의 별의 개수보다 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가동을 시작한 IBM 퀀텀시스템 원은 과학기술연구에 가장 적합한 양자컴퓨터이다. 이러한 특성을 십분 활용해 양자컴퓨팅 기술력 고양은 물론 우선 바이오 분야의 최첨단 연구를 수행하고 그 밖의 방대한 양의 자료 처리가 필요한 각종 과학기술 분야 연구가 수행될 것이라 한다.

이와 함께 우리가 양자컴퓨터에 주목해야할 점이 있다. 오늘날 직면한 기후위기 시대에 양자컴퓨터와 그 기술이 인류가 기후변화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최적 대응하기 위해서는 불확실성이 적은 보다 정교한 미래 예측값을 사용해야 한다. 이런 최적의 미래 기후 예측값 생산에 기존 슈퍼컴퓨터의 체계로는 한계가 있고 그 대안이 바로 양자컴퓨터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와 같은 50년, 100년, 200년 후 장기적인 미래예측 값은 수치예보모델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슈퍼컴퓨터 같은 대용량 컴퓨터에 구동시켜 장기적인 시간 적분을 통해 구현된다. 기후변화 시나리오 예측값 생산이 단기 날씨 예측시스템과 다른 점은 날씨 예측에서는 예보관이라는 사람이 개입하여 슈퍼컴퓨터로 계산된 예측값에 예보관의 역량을 결집시켜 그 결과를 최적으로 조정할 여지가 있다. 반면에 미래 기후변화 시나리오 예측값은 인간의 판단과 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슈퍼컴퓨터로 계산된 결과를 그대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단기예측이나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사용하는 기상·기후 수치 예보모델은 전 지구를 바둑판 같은 격자로 나누어 모든 격자에서의 기상변수들을 계산하는 체계다. 보다 정밀한 수치예보모델은 격자들이 보다 조밀해야 한다. 기존의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의 슈퍼컴퓨터보다 격자 간격이 2배 조밀해진다면 컴퓨터 용량은 동서·남북·연직으로 각 2배 증가해서 8배, 계산 안정화를 위해 적분 시간 간격을 줄이는 것까지 고려할 때 약 10배 늘어나야 한다. 4배 조밀해질 경우에는 기존의 약 100배의 하드웨어 용량이 늘어나야 한다. 슈퍼컴퓨터 CPU 자체 용량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반되는 냉각장치, 그리고 전기 사용량이 그 만큼 늘어나게 되어 막대한 부대시설이 필요하다. 물론 연산장치가 CPU 체계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전환되는 시점에 GPU로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상·기후 수치 예보모델 자체가 GPU에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아 GPU 체계로의 변환이 어려운 점, 그리고 GPU 운용에 소요되는 막대한 전기용량 문제로 GPU로의 전환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양자컴퓨터와 그 기술이다.

미래의 막연한 예측 상황이 아닌 현재 우리 곁에 이미 다가와 있는 기후위기 시대를 보다 현명하게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기후예측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나리오를 생산하는 기존 슈퍼컴퓨터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어렵더라도 새로운 기술을 펼치는 생각과 실행이 요구된다. 기상청에서는 2022년부터 CPU 체계의 슈퍼컴퓨터에서 양자컴퓨터 체계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번 연세대에 구축된 양자컴퓨터와 기상청의 계획이 어우러져 대한민국과 기상청이 기상·기후 수치 예보모델을 양자컴퓨터에 적용시키는 퍼스트 무버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최적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생산하여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모든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인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선도국가가 되는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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