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사냥” vs “가치 제고”
고려아연 사태서 존재감 과시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 타깃된
국내기업 77곳… 1년새 57%↑
“지배구조 명분, 경영권 위협”
일각선 “K-디스카운트 해소”
올해 국내 도입 20년째를 맞은 사모펀드(PEF)가 ‘은둔의 투자자’를 넘어 재계 오너가와 어깨를 겨루는 실력자로 급부상하면서 산업계가 초긴장하고 있다. 이미 생활용품·햄버거 프랜차이즈·렌터카 등의 분야에서 유수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PEF를 둘러싼 세간의 평가 역시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28일 금융감독원과 자본시장연구원·삼일PwC경영연구원 등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사모펀드가 도입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4년이다. 2004년 말 총 4000억 원 규모로 2개의 펀드가 결성된 이후 지난해 말 현재 출자 약정액은 136조4000억 원, 펀드 수는 1126개로 늘었다. 19년 동안 연평균 각각 20.6%, 27.1%에 해당하는 성장률이다.
금감원이 집계한 약정액을 기준으로 한앤컴퍼니(13조6053억 원)·MBK파트너스(11조8413억 원)·스틱인베스트먼트(6조4758억 원)·IMM프라이빗에쿼티(6조4710억 원)·IMM인베스트먼트(5조5879억 원) 등이 통상 ‘톱5’로 꼽힌다. 이들은 현재 남양유업(한앤컴퍼니), 오스템임플란트(MBK), SK렌터카·버거킹(어퍼니티), 하나투어(IMM PE) 등을 보유하고 있다. MBK는 최근 영풍과 손을 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며 인수·합병(M&A) 주체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을 망가뜨릴 정도의 강도 높은 비용 절감도 서슴지 않았던 행태 때문에 PEF는 ‘투기자본’ ‘기업사냥꾼’ 정도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PEF가 등장하는 사안에는 국내 기업들이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영국의 거버넌스 리서치업체 딜리전트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한국에서 발생한 행동주의 캠페인의 타깃이 된 기업 수는 77개사로, 전년 대비 57% 늘어 미국(160개사)·일본(103개사)에 이어 전 세계에서 3번째로 많았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사실상 모두 사라진 상황”이라며 “현재 야당 중심으로 진행 중인 상법 개정안은 행동주의 펀드에 더 많은 무기를 쥐여 주는 셈이어서 경영권 방어에만 급급하게 해 결국 정상적인 기업 활동과 미래 투자를 가로막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식투자자 수 증가와 함께 개인투자자들의 의식 수준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PEF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기업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을 소수 지배주주가 좌지우지하는 한국 특유의 의사결정 구조 아래서 PEF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적대적 M&A를 불사하는 PEF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결사로 불리기도 한다.
이근홍·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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