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왜 진정성에 집착하는가
에밀리 부틀 지음│이진 옮김│푸른숲
진정성 없다는 말을 들을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칭찬·사죄·연기·음악·대화·정치 등의 앞에다 ‘진정성 없는’이라는 표현을 붙이면 그 자체가 잘못이 된다. 가치 없다고 평가받거나 기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특히 연예인은 진정성 논란이라는 것을 달고 산다. 반면, ‘진정성 있는’이 붙으면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다. 거짓말쟁이의 이야기도 진정성 있는 거짓말이라고 하면 왠지 들어보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진정성이 없어”라고 하는 고백마저 진정성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진정성은 그 판별 기준은커녕 정의조차 내릴 줄 아는 사람이 드물겠지만, 일단 있어 보여야 하는 무언가다.
진정성이라는 굴레로부터 해방되자. 영국의 문화비평가인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간명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진정성에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여 년 전 이른바 ‘힙스터’ 문화를 돌이켜본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레코드판으로 듣는 음악, 공정무역 원두에서 추출한 커피 등이 진정성을 독점했다. 그러나 힙스터들이 진정성 없는 이들로 비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산층 위주의 가식적인 문화로 여겨진 것이다. 오히려 대중적 취향이 진정성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로 상징된 ‘기본’ 문화가 힙스터 문화의 대안으로서 진정성을 차지했다. 이 또한 스타벅스 매장이 너무 많이 생겨났다는 인식이 퍼지며 시들해졌다.
진정성의 역설이다. “진정성은 본래 자유를 추구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교리가 될 때 오히려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 각자가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진정성 추구를 막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진정성이 있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증에 모두가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자유가 아니라 억압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가 지난해의 단어로 ‘진정성(Authentic)’을 선정한 것도 이 같은 세태의 반영이다.
저자는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진정성 강박을 짚어낸다. 미국 모델 겸 방송인 킴 카다시안의 성공이 대표적이다. 카다시안 가족은 자신의 물신성을 감추지 않는다. 이들의 행태는 오히려 결코 척하는 경우가 없다는 진정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형 시술을 한 입술로 화장품 광고를 해도, 이들은 비난받지 않는다. 가식을 고백하되 멈추지는 않는다. 진정성 강박증은 하다못해 ‘진실한 거짓말’에 박수를 치도록 만들었다. 소셜미디어 팔로어 수 급증에 따라 막대한 부를 거머쥔 킴 카다시안은, 그 과정을 “재능이 없는 여자에게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자평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대목이야말로 ‘진정성의 완결판’이다. 자기 객관화를 자조적으로 연기하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부를 솔직하게 과시했다.
다만 저자의 분석들이 깊이감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다양한 사례들이 흥미롭게 제시돼 있지만 유기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저자 스스로 “개념과 사상 자체보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포함한 사건과 인식을 다뤘기 때문에 내용이 단편적”이라고 썼다. 그런데도 저자가 “진정성 자체가 탈피해야 할 규범이 됐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성급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248쪽, 1만8000원.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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