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각의 역사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 지음│홍정인 옮김│교유서가
최초 아이디어는 80만년前 나와
스페인 동굴서 열린 카니발 축제
30만년前 망자 애도 의례 생겨
17만년前엔 옳고 그름의 도덕률
종교·철학·노래·정치까지 발전
세계화로 되레 생각의 교류 둔화

‘생각의 역사’에서 펠리페 페르난데스아르메스토 영국 노터데임대 교수는 인류사 전체에 걸쳐 아이디어가 탄생하고 확산하며, 이주하고 전파되는지를 다룬다. 저자는 정치 및 도덕 사상, 인식론 및 과학, 종교 및 영성 같은 정신적 아이디어에 주목한다. 이들은 우리의 신체적 행동 양식을 형성하고, 문화를 특정한 형태로 구성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활 방식, 의례, 기술, 미적 환상, 소비와 생산, 예술품과 공예품, 통신 수단 등은 모두 아이디어로부터 나왔다. 인류의 역사는 곧 아이디어의 역사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 세계를 우리 입맛에 맞도록 바꾸는 데 필요한 모델을 제공한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80만 년 전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동굴에서 열린 카니발 축제에서 확인된다. 카니발 축제는 다른 포유류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문화다. 동족 포식을 통해서 어떤 상상된 효과(자기 변형·힘의 전유·복수 실현·승자 표현 등)를 성취하는 행위는 아이디어가 존재할 때만 가능하다. 우리 역시 이들과 똑같이 아이디어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고 세계를 변화시키려 애쓰지 않는가.
오래된 아이디어일수록 인류사에 끼친 영향도 크다. 우리 삶을 규정하는 아이디어 대부분은 먼 과거로부터 왔다. 약 30만 년 전엔 삶과 죽음을 구분하고 망자를 애도하는 의례(종교 감성)가 생겼고, 약 17만 년 전엔 바람직한 삶을 떠올리고 옳음과 그름을 구별하는 도덕률이 나타났다. 11만5000년 전엔 조개껍데기로 만든 장신구와 물감(미의식)이 출현했고, 비슷한 시기에 환자를 먹이고 장애인을 보살피는 돌봄이 탄생했다. 이처럼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아이디어는 대부분 빙하기 시대에 이미 존재했다. 인류는 큰 동물을 사냥해 쉽게 영양을 축적할 수 있고, 넉넉한 여가도 누렸기에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2만 년 전엔 표상을 통한 의사소통이 나타났다. 이로부터 물질과 지각을 넘어 정신과 영혼(신)을 보고, 그 힘을 빌려 현실을 바꾸려는 아이디어, 즉 종교(주술)와 철학과 노래(시)가 출현했다. 또한 금기(규제)와 질서가 도입되고, 정치와 경제가 탄생했다. 무리를 이끌려면 폭력이 아니라 카리스마가, 강한 신체보다 영적 재능이 중요해졌고, 물질 교환 과정도 의례화했다.
신석기 시대에 농업이 등장하면서 다른 아이디어들이 나타났다. 바람직한 방향만은 아니었다. 도시가 탄생하고 국가가 공고화하는 가운데, 개인 자유를 억압하는 규제와 압제가 증가하고, 전쟁과 노동이 삶을 지배하면서 이를 떠받치는 신성한 왕과 제국 같은 아이디어들이 출현했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출현한 전문 지식인은 인류사에 결정적 전환을 가져왔다. 흔히 사상가로 불리는 이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고, 불행과 비참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처방들을 제시했다. 영적 탐구는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해 기독교를 거쳐 이슬람교로 이어졌고, 그리스에선 철학이 나타나 발전해 갔으며, 인도에선 불교와 힌두교가, 중국에선 제자백가가 활약했다. 엄청난 기술적·물질적 진보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들이 제공한 아이디어의 자장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현대인이 추가한 아이디어는 생각보다 별로 많지 않다. 처음엔 아이디어들이 세계 각지에서 다채롭게 생겨나서 서로 뒤섞이며 다양성이 증가하는 발산의 과정을 밟았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 아이디어는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생겨나 다른 곳으로 퍼져가는 일방통행적 움직임을 보인다. 르네상스는 아이디어 역사상 최초의 전 세계적 운동이었다. 이후, 휴머니즘과 종교개혁, 계몽과 진보, 카오스와 불확실성 같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나타나 우리 삶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화에 대한 우울한 전망으로 끝맺는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의 문화는 극단적 수렴 과정을 거쳐 현재 동질적으로 변하는 중이다. 교류와 상호작용이 줄어든 세계는 결국 아이디어의 둔화와 고갈을 가져올 가망성이 높다. 단일 문화의 오만에 저항해서 소중한 다양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우리의 상상력이 침묵하지 않도록 노력할 때다. 808쪽, 5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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