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아산상 대상을 받은 임현석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 회의실에서 의사로서의 소명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백동현 기자
제36회 아산상 대상을 받은 임현석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 회의실에서 의사로서의 소명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백동현 기자


■ M 인터뷰
24년간 우간다서 인술… ‘아산상 大賞’ 임현석 원장

봉사하는 삶 살고자 의대 지망
아프리카行 결심 뒤 소아과 선택

1년간 손수 벽돌쌓아 병원 지어
빈민·난민 등 30여만명 치료

발톱 밑 파고드는 기생충 본 뒤
A~Z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진료

의사는 환자 원하는 곳에 있어야
수상 다음날 서둘러 우간다로


고교 재학 시절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같은 의사가 되기를 꿈꾸던 학생이 있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픈 소망 때문에 진로를 공대에서 의대로 바꿨다. 전문의 자격은 소아과로 취득했다. 유소년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를 겨냥한 선택이었다. 막연한 꿈이 현실로 다가온 건 경북대 의대 선배로부터 우간다 병원 설립에 관한 얘기를 들은 후였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안락한 삶을 살던 때였다. 2000년 6월 젊은 의사는 의대 동기인 부인과 어린 자녀들과 함께 우간다행 비행기에 올랐다. 1년 넘게 황무지에서 벽돌을 손수 쌓아가며 병원을 지었다. 돈과 교통편이 없어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들은 직접 찾아 나섰다. 무의촌 의료봉사를 나갈 때면 평균 1000㎞를 10시간씩 달렸다. 직원 5명으로 출발했던 작은 병원은 6개 진료과, 의료진 37명이 매달 1900여 명을 치료하는 곳으로 커졌다. 이 병원에선 2002년부터 빈민·난민 등 환자 30여만 명이 치료받았다. 우간다 베데스다 메디컬센터를 일군 임현석(59) 원장은 올해 제36회 아산상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난 임 원장은 “의사는 환자가 필요로 하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의사로서 해야 했을 일을 했을 뿐”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임 원장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교 2학년 때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그에게 “의대에 진학해 좋은 의사가 됐으면 한다”고 권했다. 기독교인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마음에 품은 시기였다.

“의사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많을 것 같았어요. 제가 의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다들 슈바이처 같은 롤 모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꿈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죠. 의사가 되고 가정을 꾸리면 현실의 벽에 바로 부딪히게 되니까요.”

아프리카로 가기 위한 준비는 차곡차곡 이뤄졌다. 아프리카 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진료과목은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 바이탈(필수의료)과다. 임 원장은 의대에서 공부할 때부터 생명을 다루는 바이탈과 전문의를 따겠다고 결심했다. 아프리카 환자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서였다.

정몽준(왼쪽)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임현석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제36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정몽준(왼쪽)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임현석 베데스다 메디컬센터 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제36회 아산상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산사회복지재단 제공


“소아과 전문의를 딴 것은 결과적으로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우간다는 15세 이하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어요. 소아과는 18세까지 진료하는 만큼 인구 절반 이상이 진료 대상이었던 거죠. 외과와 내과는 제 성향과 잘 맞지 않기도 했어요.”

‘정부 파견 의사(정파의)’를 준비하던 중 외환위기가 터졌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정파의 신규 모집을 중단했다. 길은 다시 열렸다. 우간다에서 정파의로 일하던 의대 선배가 수도 캄팔라에 병원을 짓고 의사를 구하고 있었다. 양가 부모의 반대를 넘어 도착한 우간다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막막했다.

“치안 상황이 너무 나빴어요. 병원 부지를 매입한 후 트럭을 몰고 시멘트를 사러 가면 정량을 속이는 일이 빈번했고, 건축자재를 훔쳐가는 일도 많아 밤새워 지키기도 했어요. 청진기 대신 삽을 들고 일하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여긴 희망이 없는 곳’이라며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어요. 정착 초기에 참 어려웠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병원을 열었지만 난제는 수두룩했다. 우간다 환자들이 많이 앓는 말라리아·에이즈·기생충 질환 등은 한국에서 접하지 못해 교과서에서만 보던 질병이었다. A부터 Z까지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야 했다. 한국 의사 관점에서 우간다 환자를 도와서는 안 된다는 점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전문의 타이틀을 들고 우간다 환자들을 가르치려는 마음이 많았어요. 하지만 처음 접하는 환자들을 경험하면서 그런 마음이 다 깨졌어요. 우간다에는 기생충 질환이 많아요. 피부를 뚫고 발톱 밑에 사는 기생충이 있는 환자가 왔을 때 제가 잘 몰라 현지인 간호사가 처치법을 설명해준 적도 있었어요. 병원 허가를 받기 전까지 반년간 다른 병원에 정기적으로 실습도 다녔어요. 환자 앞에서 겸손해지고 모든 걸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제 관점으로 접근하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맨발이 편한 사람에게 신발을 주는 것처럼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원하는 것을 알고 채워줘야 해요.”

병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임 원장은 우간다에서도 오지를 돌면서 ‘시골 의사’로 살았다. 돈이 없거나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 수도 캄팔라까지 오기 힘든 환자들을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의사가 없는 부부마섬에는 진료소를 세워 15년간 4만5000명을 치료했다. 수단 내전을 피해 우간다로 온 난민들을 찾아가 의료 봉사도 했다. 임 원장은 아산상을 받기 위해 귀국하기 직전에도 우간다 오지를 한 바퀴 돌았다.

“무의촌 의료봉사를 나가면 1000㎞가량 운전해 다녔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모했죠. 오전 5시에 일어나 가로등 없는 비포장도로를 10시간씩 운전할 때도 많았고 웅덩이에 차가 빠져 애먹을 때도 있었죠. 10년간 당일치기로 혼자 운전해 무의촌 봉사를 다녔어요. 제가 필요하다고 부르면 다 갔어요. 이제는 한국에서 의료봉사팀들도 많이 와요. 외과팀은 한 달에 1∼2번 이상 무의촌으로 정기 의료봉사를 나가고 있어요. 요즘엔 무의촌에 갈 때 2020년 경북대 의대 동기들이 기증한 앰뷸런스를 타고 갑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라면 쉽게 고칠 수 있는 환자를 놓치는 경우다. 현실적 여건상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도 많다. 오염된 물과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에 환자들이 병든 경우가 대다수라서 생활환경 개선 작업에도 나섰다.

“우간다 시골에 가면 손쓸 수 없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한 시골 마을에서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뼈가 살을 뚫고 나온 개방성 골절을 당했는데 몇 년 동안 방치된 사례도 봤어요. 한국에선 골절이나 탈골이 별문제가 안 되는데 우간다에선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 거죠. 나무로 불을 때는 부엌 구조상 화상 환자도 유난히 많아요. 아이들이 음식 하는 솥 주변에 있다가 화상을 많이 입어요. 화상은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구축 현상이 와서 관절이 굳어요. 이런 환자를 보면 재건 성형수술을 해서 최대한 치료해 줍니다. 물이 안 좋아서 배탈·설사 등 수인성 질환도 많아요. 장폐색이 된 아이가 와서 응급수술을 해 보니 기생충이 한 대야 가득 나오기도 했어요. 치료만 해선 근본적으로 해결 안 되는 점들이 많아요. 우물을 파고, 기생충 약을 먹이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이유예요. 환자의 삶에 다각도로 접근하는 보건의료가 효과적입니다.”

무의촌에서는 무상으로 진료를 본다. 베데스다 메디컬센터에서는 다른 사립 병원 진료비의 30∼50% 수준만 받고 있다. 빈민 지역 주민이나 장애인 등은 무료로 치료한다. 다만 중상류층 환자들에게는 기본 진료비를 1만 원가량 받는다. 이 돈으로 병원이 운영된다.

“우간다에는 의료보험제가 없어요. 무의촌에서는 무료로 진료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하지만 교회나 학교에서 진료를 해달라고 하면 형식적으로 원화로 300∼400원 정도 받아요. 멀쩡한 사람들이 몰려와 의료 자원·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죠. 내원하는 중상류층 환자들에겐 진료비 1만 원 정도를 받는데 우간다 물가를 고려하면 비싼 편이에요.”

임 원장은 우간다 뇌전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2021년부터 1년간 경북대병원 소아신경과에서 전임의 수련을 받았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자격만으로는 한계점이 많아서다. 2022년엔 베데스다 메디컬센터에 뇌전증 클리닉을 개설했다. 현재 임 원장은 병원에서 하루 10여 명을 본다.

“뇌전증 환자 1명을 살피려면 최소한 1시간은 걸려요. 환자 히스토리를 다 듣고 병력을 들어야 하고, 어떤 때는 말이 잘 안 통해 간호사들이 통역해 주기도 해요. 그렇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우리 병원이 표방하는 게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의료서비스’예요. 우간다 의사들은 권위적이고 환자에게도 설명을 잘 안 해줘요. 저와 제 아내는 환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려고 해요.”

우간다 정착 24년, 임 원장에게 의사란 어떤 직업일까. 그는 우간다 환자들에게는 어떤 의사로 기억되고 싶을까.

“우간다에는 의사가 아주 귀해서 잘 만나기 힘든 존재예요. 의사를 평생 보지 못하는 시골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에게 필요한 자들이에요. 의료가 상업화되면 사회적 문제가 많이 생기는데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건 기본 권리라고 생각해요. 저도 아프리카에서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진료를 하는 것이에요. 의사는 환자들이 필요하다는 곳에 있어야 해요. 환자가 없으면 의사도 필요 없는 존재예요. 우간다 환자들에겐 친구 같은 의사로 남고 싶어요. 슬플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같이 웃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임 원장은 24년간 구도자 같은 삶을 살았다는 평에는 손사래를 쳤다. 아산상을 수상한 다음 날인 26일 출국한 임 원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싶다면서 우간다로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돈 벌려고 우간다에 간 건 아니니깐요. 그런 만큼 교과서적으로 환자를 더 밀도 있게 치료할 수 있었어요. 의사는 정말 좋은 직업이에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거든요. 저는 의사로서 환자 곁에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에요.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요?”

권도경·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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