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경청은 대화의 기쁨 늘리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이는 효과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에 살지만

타인에게 공감·지지 받기 원해
서로의 가치 인정해주는 대화는
즐거우면서도 ‘치유의 힘’ 지녀


올해도 마지막 한 달이 남았다. 연말이 다가오니 지인들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한 해를 잘 보냈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기 위한 연말 모임의 약속이 하나둘씩 생긴다. 오랜만에 보게 될 친구들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좋아하는 사람과 맛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행복한 만남이 되려면 맛난 음식과 즐거운 대화가 필요하다. 음식은 요리사가 만들어 주지만, 대화는 참석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대화에서 경험하는 감정도 다양하다. 우정을 확인하는 기분 좋은 만남도 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만남도 있다.

즐거운 대화가 되려면 만나는 사람의 수가 중요하다. 많이 모이면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지만, 대화가 산만해진다. 대화를 하기에는 ‘삼삼오오’ 네 명 전후가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방식이다. 여러 모임에 참석해 보면, 한 사람이 많은 말을 하며 대화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며 자기 말만 쏟아내는 경우도 있다. 수시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일일이 토를 달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좋은 만남의 조건은 참석자 모두에게 골고루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주의 깊게 정성껏 경청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아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은 건성으로 들으며 속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표현하여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위로받기 위함이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두 배로 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절반으로 준다”는 말이 있다. 대화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상대방이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 준다면 더욱 그러하다. 대화에서 기쁨을 두 배로 늘리고 슬픔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것이 바로 경청이다.



경청은 매우 중요한 대인관계 기술이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고대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가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갖고 있는 이유는 말하는 것의 두 배를 듣기 위해서다.” 경청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자 존중이며 애정의 표현이다. 경청은 단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자세를 의미한다.

경청은 심리상담의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자신의 괴로움을 정성껏 경청해 주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상담자를 찾는다.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도 않은 채 섣부른 조언과 충고를 해서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담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도록 허용하면서 주의 깊게 정성껏 잘 들어주는 것이 심리상담의 기본이다.

심리학자들은 소극적 경청과 적극적 경청을 구분한다. 소극적 경청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저 들어주는 것이다. 반면에, 적극적 경청은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눈 맞춤을 하면서 적절한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음음” 추임새나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간단한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상담자는 커다란 귀와 작은 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좋은 상담자는 내담자의 말을 잘 경청하는 사람이다.

저명한 심리상담자인 칼 로저스는 공감적 경청의 치유적 기능을 강조했다. 공감적 경청은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외로운 존재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용·공감·지지 받기를 원한다. 로저스에 따르면,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자신이 잘 이해되고 수용되며 존중받는다는 감동적인 경험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성장해 나간다.

좋은 친구는 나의 말을 정성껏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사랑은 서로의 말을 잘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면서 더 깊어진다. 경청-공감-지지를 주고받는 대화는 즐거울 뿐만 아니라 치유의 힘을 지닌다.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이든 친구든 서로의 말을 공감적으로 잘 경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잘 경청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와 진실한 공감으로 경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하는가? 나의 말을 잘 경청해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성껏 경청하고 공감하면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대화는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좋은 인간관계의 핵심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고 공감하며 지지해 주는 것이다. 경청의 미덕이 필요한 시대다.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권석만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