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아파트’ 인기 한글 음악성 한몫
영어 한국어 복수언어 K- 팝 매력
MZ 세대들에게 ‘힙’해진 한국어

세종학당 대기자만 1만5000명
한글 문화·교육 적극 지원해야
부처별 정책 체계적 협력 필요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와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부른 ‘아파트(APT.)’가 한 달 넘게 세계를 들썩이게 한다. 지난주엔 2024 마마 어워즈에서 처음으로 무대를 선보여 열광을 끌어냈다. 마마는 다양한 세계인들이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을 편집해 보여주며 ‘유니크한 K-스타일 게임이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고 했다. 노래는 아파트라는 ‘콩글리시’를 세계인들이 따라 하게 하고 숱한 ‘밈’을 만들며 K-콘텐츠 신드롬을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아파트’는 여전히 ‘빌보드 글로벌 200’ 차트에서 5주 연속 정상이다. 뉴진스를 둘러싼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 등으로 K-팝 위기론이 제기되지만, 아티스트들의 끊임없는 자기 쇄신은 계속되고 있다. K-팝의 힘이다.

아파트 인기에 대해 ‘한글의 탄생’의 저자인 일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최근 ‘K-팝 원론’(연립서가)을 출간한 그는 외국인들에게 ‘아파트’라는 단어의 발음은 신기하고 의미는 수수께끼로 즐기게 한다고 했다. 또, 주종 관계없는 영어와 한국어의 ‘복수언어주의’를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인이 약간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콩글리시가 ‘복수언어주의’로 해석되다니 이 역시 K-콘텐츠의 힘이다. 그는 언어학자답게 ‘한국어의 독특한 음악성’이야말로 K-팝의 매력이라며 된소리 발음에 주로 수반되는 한국어의 ‘성문 폐쇄’와 심한 ‘후두 긴장’,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같은 의성·의태어, 감탄사와 각운이 노래를 더 즐기게 한다고 풀이했다.

K-팝이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나오는 다양한 분석 중 하나지만, 분명한 것은 K-콘텐츠 덕분에 한글이 ‘힙(hip·멋진)’해졌다는 사실이다. 이제 K-팝 팬들이 한글 가사를 따라 부르고 K-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콩글리시의 표본인 파이팅과 치맥·먹방·대박 같은 단어가 오르고 형·떡볶이·찌개 등은 등재가 검토 중이라고 한다. 패션계 마스터 카를 라거펠트가 생전에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자”라고 했듯이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도 높게 평가된다. 구찌 등 명품 브랜드들은 잇달아 한글 한정판 제품을 내놓고 있다. 영국 교육부는 한술 더 떠 영국 학생들이 왜 한국어를 배우려는지를 연구 중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갈수록 외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국가적 고민인 상황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려는 MZ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어 수요는 폭발적이다. 해외 일반인 대상 한국어 학교인 세종학당의 경우 현재 1만5000명 이상이 대기 중이다. 2007년 3개국 13개소, 740명에서 출발한 세종학당은 올해 88개국 256개소, 누적 학생은 106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재외 한글학교는 코로나 기간에 200곳 넘게 줄었다. 지난해 재외 한글학교는 1433곳으로 2019년(1735곳)에 비해 17.4% 감소했다. 재외동포 단체가 설립해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에서 인증·지원을 받는데, 영세해 한 번 문을 닫으면 다시 열기 어려운 탓이다.

올 상반기에도 음악·영상 무역수지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K-콘텐츠의 위상과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늘 K-콘텐츠 지원을 앞세우지만, 돈이 안 되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다. 관련 예산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해외 한국어 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자 교육부도 25일 사회장관회의를 열어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K-콘텐츠는 아직도 세계에서 한국 정부 주도의 결과물로 오해받고 있다. 정부는 이제 민간이 잘하는 것은 민간에 맡기고, 곧바로 이익이 나지 않지만 보다 근본적인 부문 지원에 힘써야 한다. 한국어 교육 기관에 직간접적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현지 외국인 한국어 교사도 적극 양성해야 한다. 현재 해외 한국어 교육은 일반인 교육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세종학당, 현지 정규 학교는 교육부, 한국문화원은 외교부, 한글학교는 재외동포청, 한국학은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 나뉘어 있다.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것들은 오래 남는다. 혹 K-컬처가 한풀 꺾여도 한국어를 배운 이들은 남는다. 이 MZ들이 사회 주류가 되면 2차, 3차 한국 붐을 만들 것이다. 우리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 아니, 그럴 시간이 지났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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