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보건복지부를 출입하는 전국 54개 언론사 논설위원·사회부장·정치부장 등 208명을 수취인으로 하는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됐다. 복지부에서 저출생·연금개혁을 담당하는 이기일 1차관이 보낸 편지 제목은 ‘연금개혁에 힘을 실어주시길 요청한다’였다. 이 차관은 “연금개혁의 절박함을 알리고 개혁 불씨를 살리기 위해 편지를 썼다”며 “올해는 연금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올해 국정감사에서 나온 ‘매일 885억 원 부채가 쌓인다’라는 지적을 소개하며 “맞다.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한국사회연구소가 ‘연금개혁이 하루 늦어지면 후세대에 전가되는 부채는 800억 원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18년 새 800억 원이 885억 원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차관은 “올해 연금개혁이 안 되면 어떻게 될까? 간단하다. 모든 부담을 우리 아들딸과 손자·손녀가 짊어진다”며 “가장 빠른 개혁이 가장 좋은 개혁”이라고 읍소했다. 개혁이 무산되면 연금재정은 32년 뒤인 2056년 모두 바닥난다. 연금 지급을 위해서는 2057년부터 소득의 28%를 내야 하고, 2075년에는 36%로 늘어난다.
연금 재정구조가 악화하면서 청년층에서는 ‘폰지(다단계금융) 사기’ ‘폭탄 돌리기’ 등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연금개혁청년행동 의뢰로 10월 18∼19일 여론조사공정이 설문조사한 결과, 2030세대의 47%가 연금 폐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청년층뿐 아니라 노년층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노인회는 10월 28일 노인연령을 65세에서 75세로 해마다 1년씩 단계적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주요 이유로 연금 등 사회적 부담 증가를 꼽았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노인연령 상향과 함께 연금 받는 시기도 연동해 연장할 수 있어 연금 고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현재 연금재정 고갈을 고민하면서도 대안을 세우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0월 11일 연금 정책에 변화가 없으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순부채가 2070년 180%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금재정 고갈 시계가 빨라지면서 ‘세대 갈등’을 넘어 ‘세대 전쟁’ 우려까지 커지고 있지만 국회는 무풍지대다. 정부는 9월 4일 2003년 이후 21년 만에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42%로 유지하는 연금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제22대 국회는 출범 후 6개월이 되도록 손 놓은 상태다. 지난 18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연금특위 등을 정기국회 내 출범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을 뿐이다. 여야 모두 문제지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책임이 크다. 민주당 소속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은 7월 “국민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9월 정기국회 전 연금개혁 정부안을 제출하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정작 정부안이 나온 지 2개월 넘은 지금껏 한 차례 논의도 없다. 1889년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을 도입한 독일의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붙잡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정치인들이 연금개혁 골든타임을 붙잡아 책무를 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