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2차 의료 육성, 일차의료의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비급여·실손보험 개혁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이를 기초로 의료개혁 2차 실행 방안을 연내에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중 초미의 관심인 비급여·실손보험 개혁은 의료개혁의 단골 메뉴이자 정부의 숙원 과제지만 아직 명쾌한 해법을 못 찾았다.
실손의료보험의 2023년 위험손해율은 118%로 적자 규모가 2조 원대이고, 2019∼2023년의 실손보험 누적 적자는 11조 원이 넘는다. 2009년 제도 도입 이후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3차례 개혁이 단행됐지만 기대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2021년부터 판매 중인 4세대 실손보험의 올해 1분기 손해율은 134.5%로 전년 동기 대비 18.9%p 높아졌고, 3세대 실손보험은 156.3%를 기록했다. 손해율을 낮추기 위해 고안된 신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더 높아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손보험을 거듭 개혁했는데도 손해율이 높아지는 근간에는 건강보험 비급여의 거침없는 증가가 있다. 비급여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하는 4세대 실손보험이 만들어졌지만 비급여는 더 늘고 있다. 그래서 의료개혁위는 건강보험 적용 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보장 비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혼합진료의 제한, 의료비 지출이 많은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본인 부담금 비율 상향, 비급여 진료 가격을 공표하는 참조가격제 도입 등 특단의 조치를 검토 중이다.
비급여가 통제되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개의 의료기관이 민간이라는 데 있다. 사실상 영리를 추구하는 의료기관은 낮은 건강보험 수가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의료 이용량을 필요 이상 늘리거나 정부 통제가 느슨한 비급여를 확대해 왔다. 환자는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비용 때문에 주저했을 비급여 항목들을 맘 편히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고비용 의료 구조의 악순환 고리가 작동된다. 더욱이 비급여 이용 증가는 매칭되는 건강보험 급여 이용량도 증가시킴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정적이다. 공공의료기관 비중을 쉽게 높일 수는 없는 만큼 진료비 심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손보험 손해율 상승으로 보험사는 비명을 지르지만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의료보험 시장은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정신적 해이(moral hazard)로 시장 실패 가능성이 큰데도 근시안적 수입보험료 욕심으로 실손보험 시장에 뛰어들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40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은,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출이 이렇게 폭증할 줄도 모르고 보험료 수입에 눈이 멀어 보험인수를 마구잡이로 해왔다는 방증이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금의 비급여 확장은 의료 공급자와 이용자의 암묵적 담합 구조에 의해 촉발되는 만큼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 건강보험과 민영 실손보험의 협업이 긴요하다. 필수가 아닌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는 실손보험이 의료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을 경감시키지 않도록 재구조화해야 한다. 실손보험 가입자도 현재의 과다한 의료 이용이 궁극적으로 보험료 인상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민의식 성숙이 요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