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산심의가 입법기관인 국회의 탈법과 범법, 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례임이 드러났다. 지난 26일 감사원이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합의하지 못한 쟁점 예산을 결정하는 소(小)소위원회(소소위)가 지난 4년간 20개 사업, 2520억 원 상당의 ‘불법 예산’을 책정했고, 소소위의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며, 사업의 타당성보다 ‘특정 이해관계’에 치우쳐 예산안을 심의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소위는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긴 예산안을 처리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타협점을 찾자는 취지로 2008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의해 설치된 이후 지금까지 관행처럼 활동이 이어져 왔다. 소소위는 예결특위 위원장과 국회 교섭단체의 여야 간사로 구성된다. 국회법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적 임의 기구이다 보니 속기록도 회의록도 없고,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돼 ‘깜깜이 심사’ ‘짬짜미 예산’ 등으로 불린다. 이는 관행으로 포장된 탈법행위이다.
소소위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두드러졌다. 예산안 계수조정 마지막 단계에서 야합의 장으로 변질해 밀실 정치를 방조해 왔다. 국회의원들이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구 민원 예산을 쪽지, 카톡 등으로 소소위에 밀어 넣어 청탁하는 행태가 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지경이다. 이른바 ‘쪽지예산’ ‘카톡예산’의 행태는 정상적인 정부 예산안 편성 과정과 국회 심의 절차를 무력화하고, 증액으로 인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
이번 국회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훨씬 심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도 예산안 심의는 677조 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 감액 심사를 마친 가운데 약 43조 원 규모(전체 예산의 6.38%)의 예산안이 소소위로 넘어갔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보류된 예산은 정부 예비비, 공적개발원조, 연구·개발, 대왕고래 프로젝트, 원전 생태계 금융 지원, 용산어린이정원 조성 등과 관련된 예산이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사용 내역이 입증되지 않는 예산은 삭감한다’며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검찰·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를 전액 보류했다.
거대 야당이 쟁점 예산의 대부분을 보류한 것은 정책적 타당성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치 보복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윤석열 정부의 중점 사업은 물론 대통령실 기능마저 마비시키고, 검찰과 감사원의 특활비 삭감은 ‘앙갚음’을 위한 입법 폭거다. 예산 보복을 통해 적대적이라고 여기는 국가기관의 기능을 저해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정치적 도발이다. 시종일관 특검법과 판·검사 탄핵 등의 정쟁 입법에 몰두하면서, 민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부 예산심의에까지 입법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올해 소소위는 예년보다 더 큰 보류 예산을 둘러싸고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기세다. 거대 야당은 쟁점 예산을 볼모 삼아 쪽지예산 흥정에서 우위를 잡으려 할 것이고, 소수 여당은 보류 예산의 최대 확보를 위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국회의원들이 혈세를 쌈짓돈 쓰듯 하는 특권적 관성에서 벗어나길 기대하긴 어렵다. 소소위의 ‘밀실 정치’ 관행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의 저열한 집단사고가 여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