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Global Window - 석유·화석연료 ‘부활 기지개’
선거자금 지원-규제폐기 빅딜
파리협약 재탈퇴·시추권 얻어
내무·에너지부엔 ‘親석유’장관
노르웨이·영국 등 시추허가 증가
진행땐 150억t 이산화탄소 배출
‘화석연료 산업 활성화’를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각종 규제에 움츠러들었던 미 석유업계가 슬슬 몸을 풀고 있다. 대선 초기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며 선거 자금을 제공해온 대가로 ‘규제 철폐’라는 전리품을 챙겼고, 현 정부의 ‘친환경’ 흔적을 지울 업계 인사들을 트럼프 2기 행정부 요직에 앉히면서 호재를 맞은 덕이다. 다른 선진국들도 겉으로는 ‘화석연료 시대의 종결’을 외치면서 뒤로는 석유 시추 활성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전 세계 석유 및 화석연료 업계가 화려한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트럼프 지지하고 전리품 받은 석유업계 = 2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석유 업계의 노골적 지지는 미 대선 레이스 초반인 지난 4월 시작됐다. 당시 트럼프 당선인은 최측근 중 한 명인 석유 재벌 해럴드 햄 콘티넨털 리소시즈 CEO의 제안으로 자신의 사저인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에너지 원탁회의’라는 이름의 비공개 만찬을 열었다. 햄 CEO는 해당 만찬에 엑손모빌, EQT코퍼레이션, 미국석유협회 소속 임원 등 11명의 업계 최고위 관계자를 초대해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석유업계가 자신을 지지해주고 캠프 측에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의 선거자금을 낼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자신이 석유업계의 도움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하면 이들을 옥죄어오던 바이든 대통령의 규제 정책들을 모두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에 대한 지지와 자금에 대한 대가로 규제를 없애겠다는 ‘빅 딜’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트럼프 당선인이 결국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석유 업계는 규제 완화를 약속받게 됐다. 실제 FT는 트럼프 2기 행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차기 행정부가 △미국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재탈퇴 △알래스카 보호지역 내 시추권 제공 △화석연료 활성화 등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관련 조치들을 뒤집을 구체적인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이뤄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국가들과 본격적인 경쟁구도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석유 거물들이 이끄는 트럼프 2기 내각 = 석유업계는 또 자신들의 업계와 깊은 관련을 가진 인사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요직을 차지하게 된 점도 환영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내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다. 트럼프 당선인이 “에너지 차르”라고 부르기도 한 버검 주지사는 소프트웨어·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쌓았지만 2016년 햄 CEO가 ‘셰일가스 혁명’을 일으킨 노스다코타에서 주지사로 선출되며 석유업계와 연을 맺었다. 특히 버검 주지사는 자신의 가족이 노스다코타에 소유한 토지 약 25만 평을 콘티넨털 리소시즈에 임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버검 주지사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셰일 회사들에 국유지 시추권을 내주는 등 대규모 탈규제 정책을 통해 미국의 석유·천연가스 생산 늘리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버검 주지사 이외에 에너지부 장관으로 지명된 크리스 라이트 리버티에너지 창업자 겸 CEO도 트럼프 당선인의 친(親)석유 정책을 앞장서서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원탁회의’에 참석하기도 한 라이트 CEO는 당시 햄 CEO의 주선으로 만찬 도중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라이트 CEO는 트럼프 당선인 앞에서 ‘눈도장’을 받을 기회를 잘 활용해 에너지부 장관직을 차지한 셈이다.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으로 지목된 리 젤딘 전 연방하원의원(뉴욕)은 EPA라는 기구와 정반대로 석유 산업 반규제파다. 이에 FT는 EPA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정책이었던 배기가스 제한, 전기차 전환 등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의 ‘오른팔’ 기구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각국, 석유산업 활성화 움직임 =트럼프 당선인뿐 아니라 세계 각국도 화석연료 시추 허가를 늘리는 등 석유 업계에 대한 규제를 대폭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입을 모아 “화석연료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어 각국 정부의 행보는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워싱턴포스트(WP)는 국제지속가능개발연구소(IISD)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노르웨이, 영국, 호주 등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이 미국과 함께 지난 12개월간 석유 업계에 화석연료 시추를 가장 많이 허가한 상위 10개국에 속해 있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허가한 시추 사업이 실제로 진행될 경우 향후 6개월간 총 150억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과 중국 양국이 2022년 한 해 배출한 이산화탄소 총량과 맞먹는 수치다. WP는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연설에서 석유를 ‘액체 금’(liquid gold)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 만큼 내년 1월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이후 세계 각국의 화석연료 시추와 사용, 수출 등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박상훈 기자 andrew@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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