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다산의 일기장’출간
천주교 탄압 등 기록 담아


“다산의 완결성과 순정성에 바치는 경배는 지금까지의 학술적 성과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는 다산과 그의 시대를 더욱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대면할 때가 됐다.”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 등 조선 지성사를 전방위로 탐구하는 고전학자 정민(사진) 한양대 교수는 다산이 남긴 일기장을 파헤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다산이 33세의 나이에 지방으로 좌천된 후 상경하고 다시 외직으로 밀려나기까지 2년간(1795∼1797) 작성했던 4종의 일기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을 분석해 ‘다산의 일기장’을 출간했다.

조선을 대표하는 실학자인 정약용에 관한 연구는 그간 많았지만 그가 젊은 시절 남긴 사적인 기록은 학술적으로 분석되지 못했다. 그러나 30대의 다산이 남긴 이 기록에는 이후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거침없고 모순적이고, 때로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숨어있다. 3일 출간을 맞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정 교수는 “일기임에도 다산은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객관적 사실 기술만 있지만 지나가듯 무심하게 언급한 내용의 배경을 살펴보면 다 맥락이 있고 감춰둔 행간이 깊어 읽는 내내 깜짝 놀라곤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금정일록’ 속 이존창 검거 사건은 행간을 읽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주문모 신부를 피신시킨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정약용은 금정으로 좌천된 후 정조의 명령으로 천주교 지도자인 이존창을 체포했다. 천주교 서적을 가까이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신부를 피신시킨 신자였던 그가 천주교 탄압에 앞장선 배교자가 된 순간이다. 다만 여기서 다산은 다시 한 번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그는 교계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를 검거한 공로로 상경 명령을 받게 된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 이를 복귀 명분으로 삼기를 강력하게 거부했다. 책에는 이처럼 완역된 일기의 내용과 함께 백문백답 형식으로 풀어낸 당대의 상황이 담겼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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