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80년 9월 내란음모 사건 주동자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기 전 이렇게 최후 진술을 했다. “머지않아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이다. 그때 나를 위해서든,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다. 내 마지막 유언이다.”
옥중에서도 “어떠한 증오나 보복심을 갖지 않음을 조석으로 다짐했다”고 한다. DJ는 1997년 12월 대선에서 당선된 뒤 김영삼 대통령의 전두환·노태우의 사면·복권에 동의해줬다. 납치사건 주범 이후락에게 보복은 없다고 안심시켰다. 박정희기념관 건립 요구를 수용해 이행했다. 박정희가 세운 영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직 대통령 내외를 초청해 만찬도 했다.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었고 역작용도 있었으나, 국민 통합정치의 대표적 실천 사례로 거론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오찬을 마친 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왜 보복이 없는 포용과 화해의 정치를 얘기하셨는지 이제는 절감하게 됐다. 내가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이제 정치보복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며 “기회가 되면 제 단계에서 끊겠다”고 했다. 열흘 새 두 재판에서 유·무죄 선고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으니, 정치 탄압 프레임을 내걸었던 그로선 DJ의 서사에 묻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곧이듣는 분위기가 아니다. 과거 발언들이 다시 회자한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법질서를 어기며 사익을 취한 자들에 대한 단죄가 정치보복이라면, 그런 보복은 초고강도로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대선 때는 “어떤 대통령 후보가 정치보복을 공언하느냐. 하고 싶어도 꼭 숨겨 놨다가 나중에 몰래 하는 거지…”라고 했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국회 체포동의안에 찬성했거나 대거리를 했던 인사들에 대한 보복은 지난 총선 때 ‘비명횡사’ 공천으로 나타났다. 수사 검사들을 차례로 탄핵 선상에 올리고, 특수활동비를 삭감한 것도 보복의 범주다.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놓고, 집권하면 보복을 않겠단다. 혹여, 그리된다고 해도, “존경하는 박근혜라 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했듯이 “정말 보복하지 않을 줄 알더라”고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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