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합니다 - ‘깨복쟁이’ 친구들 <하>하>
개산과 가야산이 맞닿은 중간지점을 넘고 몇 개의 마을을 지나야 지금은 폐교된 동수국민학교가 있었다. 진포리, 개머리, 텃골, 동방, 오량리 등 주변 마을에서 모여든 조무래기들은 차가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신작로를 따라 뛰어다녔다.
책보를 등에 사선으로 메고 신나게 뛰면 필통 속 문화연필은 찰랑찰랑 멍이 들어 시험 보는 순간 이미 멍든 연필심은 덧셈 뺄셈을 뚝뚝 분질러 먹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시험지는 일단 학년과 반 그리고 이름까지는 자신 있게 쓰고 나면 바로 1번 문제부터 처음 보는 상형문자로 변했다. 주로 쉬운 문제를 1번에 배정하는데도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라는 것 이외는 알 길이 없었다.
그때 인찬이는 연필에 네 군데 홈을 파 놓고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몰래 굴렸다. 소리 나는 책상을 피해 시험지 위로 굴렸다. 4지 선다형에 확률은 25%였다. 답은 일사천리로 나왔다. 상형문자처럼 보였던 문제가 소깔(쇠꼴) 베기보다 더 쉬워졌다. 1시간 시험을 5분 만에 끝내 놓고 나를 보며 웃었다. 시험이 다 끝났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을 몰래 훔쳐본 숙희가 키득키득 소리 죽여 웃었다. 숙희는 전교 1, 2등을 다투는 수재였다. 그렇게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하는 날 양가양가가 수북이 쌓인 통신표를 받아 든 인찬이는 그래도 방학이 즐겁다는 듯 누런 이빨을 환하게 출렁이며 신작로를 뛰어갔다.
6년은 길지 않았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 든 우리는 일찍 헤어졌다. 몇은 중학교로 또 몇몇은 가난한 들꽃 따라 도시로 흩어졌다. 그 길이 수십 년 동안 이산의 동심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영산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나무토막처럼 도시의 그늘진 곳만 골라 흘러갔다. 숙식 제공이란 말이 사회적 화두였던 시절 어떤 직업이 장래가 밝은지 어두운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선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이 미래요, 희망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스스로 위안 삼으며 주로 가는 곳은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그중에 짜장면이 그리운 중국집을 선호했다. 중국집 사장은 꼭 한 달씩 밀려 월급을 주었다.
배달이 많은 시절 어디서 월급을 더 많이 준다 하면 배달 가는 척 철가방을 들고 가버린 경우가 많아서 주인도 머리를 쓴 것이었다. 심지어 두세 달씩 밀려 주는 주인도 많아서 가기 전에 얼마나 밀려서 월급을 주는지 흥정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은 생활이 불편할 뿐 결코 죄가 아니다. 자기 잘못으로 시대의 소외인으로 산 것이 아니다. 결코 또 있어서는 안 될 6·25전쟁이 그 시절 철가방을 슬프게 했던 것이다. 헐벗고 굶주리며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한 동족의 전쟁은 앞으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그 설움의 세월을 이기고 돌아온 진포리 깨복쟁이 친구들이 57년 만에 다시 만났다. 가야산과 개산은 그대로인데 조무래기에서 백발의 주름진 얼굴로 돌아왔다. 한때 뭉텅뭉텅 게워 내던 이 시대의 울분을 두 주먹에 새기며 돌아온 주름들이다.
친구야, 깨복쟁이 친구야, 너번들 수박밭에서 옛 솜씨 한번 발휘해 볼까? 그때의 수박 맛이 주름진 이마를 톡 치고 지나간다.
김재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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