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엄사태’ 긴급좌담
문화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과 후폭풍을 진단하기 위해 4일 오후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정치학)와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를 문화일보로 초청해 좌담을 벌였다. 진행은 허민 전임기자가 맡았다. 문화일보 ‘초빙 저널리스트’인 두 교수는 계엄이 위헌적 ‘자해행위’(김 교수)이며 ‘자살골’(장 교수)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여당이 야권의 대통령 탄핵안에 동조할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장 교수는 내란죄 요건인 ‘국헌문란’을 놓고 볼 때 더불어민주당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고, 김 교수는 계엄 사태는 물론이지만 민주당의 ‘다수의 횡포’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장영수 고려대 교수 (헌법학)
진행 = 허민 전임기자
△허 전임: 윤 대통령의 계엄 사태, 한밤의 정치드라마로 시작해서 새벽 별이 뜨기도 전에 끝났습니다. 가장 궁금한 건 법적인 문제입니다. 계엄 선포가 위헌이냐 하는 걸 텐데요.
△장 교수: 헌법(제77조)에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윤 대통령의 계엄은 어느 것 하나 확실히 갖추지 않았습니다. (계엄 선포는) 위헌입니다. 대통령이 야당의 입법 독주, 예산 독주, 탄핵 남발 등 이런 걸로 국정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게 군을 동원해서 해결할 문제인가요. 헌법 요건으로 봐도, 계엄법 요건으로 봐도 위헌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김 교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그 이유로 야당의 예산안 일방 처리와 탄핵 남발, 검사 탄핵, 반국가 종북 세력 준동 등을 얘기했습니다. 국회가 반국가 세력이란 건데 그들을 뽑아준 건 국민이잖아요. 논리적으로 허용이 안 됩니다. 대통령은 야당이 위헌적으로 민주질서를 훼손했다고 판단했으면 계엄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에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는 게 맞습니다. 이번 계엄 선포는 1987년 체제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가장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허 전임: 조심스럽게 전망을 한번 해볼까요. 앞으로 헌법재판소 기능이 정상화한다는 전제 아래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가 통과할 경우 탄핵안이 헌재에서 인용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장 교수: 헌법 제65조 1항은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위헌·위법할 때 국회가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죠. 윤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고 계엄을 선포했으니 위헌·위법으로 볼 수밖에 없어요. 여기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헌재가 탄핵안을 인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헌재 판례를 통해 일관되게 얘기하는 건 위헌·위법이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가 하는, ‘불법의 중대성’입니다. 이번 계엄 선포가 대통령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불법이냐 하는 건데, 여기엔 조금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시설의 파괴나 인명 살상 이런 피해가 거의 없잖아요. 짧고 가볍게 끝났습니다. 이걸 불법의 중대성으로 보긴 어렵습니다.
尹, 반국가 세력 준동 등 언급
국민이 뽑은 국회 부정하는셈
‘1987년 체제’ 이후 최대 오점
한동훈, 尹 탄핵 찬성 안할 것
이재명 당선 돕는 일이라 인식
민주‘다수의횡포’정당화 안돼
△김 교수: 저는 헌재의 결정을 다른 관점에서 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죠. 헌재 성향별 구성에서 보수가 더 많았는데도 ‘8대 0’으로 일방적인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탄핵은 결국 정치적 심판입니다. 헌재가 얼마나 법리적 판단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허 전임: 제 취재 경험을 봐도 박근혜 탄핵은 법적 과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여론이었고요. 법적인 문제 하나만 더 짚겠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번 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하느냐 문제입니다. 야권이 이미 내란죄 현행범으로 대통령을 고발하잖아요.
△장 교수: 개인 의견으로, 내란죄 성립은 어렵다고 봅니다. 형법상 내란죄의 구성 요건은 2가지입니다. ‘국토참절’과 ‘국헌문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주권 행사를 배제하고 불법적 권력을 행사한 건 아니죠. 그렇다고 국헌문란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계엄 선포를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헌정 질서를 뒤엎는 것으로 본다면 그런 사례는 여야 할 것 없이 다 무지무지하게 많을 겁니다. 다수당인 민주당이 더 심각하죠. 만약 국회가 계엄 해제를 요구했는데도 대통령이 버티고 군대를 더 동원하고 했다면 그건 국헌문란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번 건은 그렇지 않습니다.
△허 전임: 군인들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것도 내란이고, 계엄포고령에서 국회 활동 금한다고 한 것도 내란죄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장 교수: 법은 확대해석하면 안 됩니다. 형법상 명확한 규정에 따라야죠. 유추해석은 죄형법정주의와 맞지 않습니다.
△김 교수: 저는 이 점을 짚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위헌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건 지극히 잘못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다수의 폭정’을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거죠. 의회권력과 행정권력이 충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당도 위헌적 요소가 많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점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 선포 때문에 이게 다 묻혀 버리고 있다는 거지만.
△허 전임: 그럴수록 이런 의문이 듭니다. 대체 윤 대통령은 왜 그랬을까요. 왜 그렇게 느닷없고 무모하기까지 한 계엄을 선포했을까요.
△장 교수: 우스갯소리이지만 시중에는 대통령이 감사원장이나 검사 탄핵 이런 거 막으려고 ‘살신성인’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더군요.
△김 교수: 국회가 계엄의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즉각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그렇게 했는지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결정적 오판이죠. 계엄군이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적극적으로 봉쇄하지도 않았어요. 저는 계엄이 일종의 ‘블러핑’(상대를 속이기 위하여 허세를 부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허 전임: ‘블러핑’에는 일종의 의도가 숨어 있죠. 그게 뭘까요.
△김 교수: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야당의 무차별 탄핵 등으로 행정과 사법이 마비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이거 막자는 판단에서 한 거죠. 물론 이건 ‘선의의 해석’입니다. 제가 이 해석에 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계엄 선포 과정이 굉장히 즉흥적이고 돌발적이라는 점에서 검사 출신 정치인의 일 처리 방식이 보였어요. 오랜 정치적 학습과 훈련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결과 아닌가. 저는 대통령이 ‘자해정치’를 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장 교수: 저도 ‘자살골’ 같아요. 회복 가능한 건지도 불투명하고. 대통령의 지지층도 많이 떠날 거다, 국정 지지율도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정 간에도 확실한 변화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 그런 느낌이고요.
계엄, ‘내란죄의 요건’못 갖춰
형법상 죄 확대 해석하면 안돼
‘국헌문란’따지면 민주도 심각
파면 이를 ‘불법 중대성’논란
헌재, 국회탄핵안 인용 불투명
尹·여야 ‘惡手 경쟁’벗어나야
△허 전임: 벌써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죠. 여당이 대통령 탈당에 내각 총사퇴까지 요구했으니.
△김 교수: 그렇다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탄핵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봐요. 탄핵이 실제 이뤄지고 조기 대선이 결정되면 여당 후보가 100% 패합니다. 시간을 좀 더 끌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활용할 필요가 있는 여당이나 한 대표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죠. 한 대표가 대통령 탈당시키고 탄핵으로 몰고 가 당을 장악하고 후일을 도모하겠다면 오판입니다.
△허 전임: 저는 한 대표의 딜레마가 있다고 봅니다. 계엄 선포되자마자 자기 입으로 “위헌이다,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했어요. 장 교수님께 묻습니다. 위헌이라고 생각되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탄핵안에 찬성해야 합니다. 차기 대권을 생각해서 탄핵에 반대한다는 거, 이거 모순 아닌가요.
△장 교수: 위헌·위법이라고 해서 반드시 탄핵되는 건 아니고요. 불법의 중대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한 대표가 아무리 정치 경험이 짧아도 정치판에 발을 들였으면 정치논리를 안 따라갈 수는 없잖아요. 한 대표의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완전한 결별로 갔을 때는 같이 추락한다는 생각을 할 거라고 봅니다.
△김 교수: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왜 못 만날까요. 정치로 풀 문제를 정치로 풀지 못하는 것, 이게 정치 훈련을 받지 않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의 문제입니다. 그게 비극 아니면 소극을 만들어내요.
△허 전임: 이 대표에겐 지금이 최고의 기회이겠죠.
△김 교수: 이 대표는 지금 상황이 너무 고맙죠. 세 가지 플랜이 있을 겁니다.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대권 행보를 고수하는 것, ‘신3김’ 등 포스트 이재명으로 가는 것, 이 대표 자신이 킹메이커가 되고 사면복권 받아 차차기 대선에 당선되는 것.
△허 전임: 이재명 대권 프로젝트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어찌 보면 유권자일 겁니다.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되고 절대다수 의석으로 입법권까지 갖는 걸 국민이 받아들일까요.
△김 교수: 이 대표가 ‘나치’처럼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나치가 ‘수권법’으로 행정과 입법을 틀어쥐었듯이 그걸 꿈꾼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이 만만치 않아요. 그런 걸 용인하겠습니까.
△허 전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국,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김 교수: 한국계 미 하원의원 앤디 김이 계엄 사태에 대해 좋은 말을 했어요. “민주주의에는 항상 도전이 일어나지만,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탈당하고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서 협치하는 방법밖에 없을 겁니다.
△장 교수: 그게 교과서적이고 맞는 얘기인데, 여야의 적대적 태도를 봤을 때 가능할까…. 지금 윤 대통령이나 여야는 모두 상대의 실수에 기대 ‘악수(惡手) 경쟁’을 벌이고 있죠. 여기에서 벗어나 국민이 진정 원하는 걸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이 정국 해법입니다.
△김 교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누가 먼저 시도하느냐가 핵심이겠죠. 그러려면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장 교수: 믿음에 비전을 제시하면 더욱 좋겠죠.
정리=김대영 기자 bigzer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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