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참으로 어이없는 사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3일 심야에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해놓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불과 6시간 만에 해제할 계엄을 왜 느닷없이 선포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먼저, 대통령의 위기의식이 국민의 정국 인식과는 매우 먼 거리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조한 국정 지지율에도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대통령의 호언장담이 허무할 뿐이다. ‘나만 믿고 따르라’는 식의 발상은 시대착오적 통치 행태다. 대통령 리더십이 참담한 실패로 끝날 태세다.
계엄 선포와 관련, 5일 사표가 수리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중과부적’(수가 적어 대적할 수 없음)이라는 한심한 이유로 계엄군 소집을 해제했다고 한다. 국가위기 사태를 선포하는 데 있어 이렇게 허술하게 기획했다면, 이는 국가안보가 심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윤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한 신뢰가 전반적으로 무너졌다. 선출된 정부의 정통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를 당혹스럽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가장 모범 국가라는 자긍심에 타격을 주었다. 1979년 이후 처음으로 선포된 계엄령으로서, 국격을 그 시절로 되돌렸다. 경제 손실은 물론 상승세를 타는 K-문화에도 손상을 줬다. 스웨덴 총리 방한이 무기 연기됐고 미국과 대북 핵억지력 강화 회의도 연기됐다. 민주주의 가치에 기반한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올랐다고도 한다.
지도자의 판단 잘못으로 인한 파급 효과는 참으로 엄청나다. 자칫했으면 비극적 유혈 사태로 번졌을 계엄령이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안에 동의함으로써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윤 대통령이 그래도 헌법 절차는 지켰다고 강변할 수 있으나, 이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 깊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가 권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정치 경험이 일천한 지도자의 섣부른 판단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정치의식은 엄중했다.
문제는 비상계엄령 실패에 따른 후폭풍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은 정부 흔들기 선전선동 전략을 시종일관 펼쳐 왔다. 윤 대통령은 입법 독재를 통해 정부 기능을 마비시켜 정권을 탈취하려는 야당의 술책에 그만 자충수를 두고 만 것이다. 야당은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윤 정부가 비상계엄을 준비하고 있다는 ‘괴담’을 퍼뜨려 계엄령을 가스라이팅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활비 등을 삭감한 예산안을 통과시킨 야당의 입법 ‘불장난’은 마침내 윤 대통령의 인내심을 불살랐다.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4일 제출했고 7일 표결할 예정이다. 그러나 제2의 탄핵 정국을 만들어 국정을 중단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윤 정부의 질서 있는 퇴각을 슬기롭게 준비하는 게 국가와 국민에게 더 중요하다. 또 실기하면 레임덕 이전에 통치 불능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하야 요구도 분출할 것이다. 일각에선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럴수록 국민은 위기 극복을 위해 거리정치에 휘말리지 말고 각자 소임에 열중하는 지혜를 보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