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뒤흔든 6시간 계엄령 ‘충암고’ 선배 김용현 임명은 尹의 ‘충성’ 기준 인사가 원인
尹 “나는 잘못한 게 없다”지만 국민 불안·수치심 불러일으킨 계엄 의도·과정 철저 규명 필요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8분부터 4일 새벽 4시 30분까지 6시간 2분 동안 대한민국 전역이 밤잠을 설쳤다. 윤석열 대통령의 ‘야밤’ 비상계엄 선포에 1979년 군사정권의 계엄을 실제 경험했던 세대는 통행금지와 유혈사태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출생한 세대는 교과서에만 나오던 계엄이라는 단어 등장에 당혹감과 함께 조소를 날렸다. SNS가 일상인 젊은층에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담긴 가짜뉴스 금지와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처단은 너무나 현실성이 없었을 것이다.
후일에 ‘12·3 비상계엄 시도’로 명명될 듯한 이번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윤 대통령이 4일 한덕수 국무총리 등을 만나 “더불어민주당이 남발하는 탄핵 폭거를 막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윤 대통령이 왜 이런 악수(惡手)를 뒀는지는 향후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한 총리의 간곡한 만류에도 비상계엄 선포를 밀어붙이도록 확신을 심어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어떤 판단으로 비상계엄을 건의했는지도 명확히 조사돼야 할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번 사태를 촉발한 시발점은 올해 8월 12일이다. 윤 대통령이 김 당시 경호처장을 국방장관에 지명한 날이다. 김 전 장관을 국방장관으로 영전시키기 위해 신원식 당시 국방장관을 국가안보실장으로,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라는 자리를 만들어 이동시켰다. 국방장관을 강하게 원했던,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 전 장관을 위해 ‘돌려막기’를 한 무리한 인사였다. 이 때문에 북한과 대치 중인 분단국가의 안보 수장이 겨우 11개월 만에 교체됐고, 국방뿐 아니라 외교·통일까지 다뤄야 할 국가안보실장에 군 인사가 지명된 뒤 안보실의 컨트롤타워 기능도 약화했다.
이후 윤 대통령의 인사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민주당의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 공세에서 윤 대통령 부부를 보호해줄 수 있느냐를 최우선 기준으로 판단하는 듯했다. ‘충성’이 가장 중요한 잣대였다.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동문(충암고)이나 위계질서와 명령에 충실한 군인·검사 출신이 중용됐다. 핼러윈 참사에도 탄핵을 견디고 살아남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충암고 4년 후배다. 또, 오는 10일 취임하는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가 지난 2월 윤 대통령과의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가 수수한 명품 가방을 ‘조그만 파우치’라고 하지 않았다면 사장이 될 수 있었을까.
윤 대통령의 불안과 고집에 따른 잘못된 인사가 겹겹이 쌓여,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시에나 발령될 비상계엄이라는 오판을 만들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한 인식은 틀렸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대한민국 풍전등화의 운명’을 타개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고 했지만, 이후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했기 때문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증대 속에서 김 전 장관 사퇴로 국방부는 1948년 7월 17일 창설 이래 첫 국방장관 직무대리 체제로 들어갔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헛발질을 계기로 탄핵 절차를 가속화하고, 공무원은 조기 레임덕 분위기에 ‘복지부동’ 태세이고, 외국 정상의 방한은 줄줄이 취소됐다. 윤 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오히려 윤 대통령 본인으로 비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이 치욕감을 느끼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이 세계 10위 경제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의 계엄 사태를 연일 주요 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국민은 매달 정치위기설에도 시달리고 있다. 10월 위기설은 김건희 여사 의혹과 이를 둘러싼 여야 및 당정 갈등 증폭 우려, 11월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위증교사 혐의 사건 1심 선고에 따른 야당발(發) 위기설이 돌았다. 그리고 12월은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로 위기설이 아니라 진짜 ‘위기의 달’이 돼 버렸다. 대통령 레임덕과 거야의 무더기 탄핵, 여기에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연말연초 시기가 ‘축복의 시간’이 아니라 ‘재앙의 시간’이 될까 너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