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尹의 자폭 李에겐 정치적 횡재
非탄핵적 조기 퇴진 나선 여당
젊은 세대 반발 예상보다 심각

尹 수사 본격화 땐 李 방탄 흔들
제로섬 정치 극복할 대안 절실
여당은 조기 대선 공포 버려야


대통령 윤석열은 이미 ‘정치적 사형 선고’를 받았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7일 저녁 가까스로 폐기되고, 다음 날 한동훈 여당 대표와 한덕수 총리가 “질서 있는 퇴진”과 “공백 없는 국정”을 국민 앞에 약속했음에도 정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윤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국정 운영이 가능할지, 무엇보다 다수 국민이 수용할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여당의 당론 반대는,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의 찬반 분열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일부 친윤 세력과 당 밖의 강경 보수세력 압박에 당내 입지가 약한 한 대표가 밀린 측면도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실질적 배경은, 윤 대통령 퇴진과 차기 대통령선거를 최대한 늦추지 않으면 다음 정권을 그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헌납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여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이탈이 부적절한 것은 사실이지만, 탄핵소추안 부결 역시 국민이 만들어준 국회 의석 분포에 따른 결과인 만큼 존중돼야 한다. 계엄 선포를 위헌으로 보면서도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적지 않다. 야당이 탄핵소추안을 속전속결 처리하려는 배경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확정판결 이전에 대선을 실시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계엄 사태 전에는 입법·예산·탄핵·특검 폭주 등 ‘이재명의 민주당’에 의한 헌법 가치 유린이 더 심각했다. 야당이 유사한 탄핵소추안을 무한 재발의하겠다는 것은 본질적으론 계엄 사태와 다름없는 반헌법적 횡포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때까지, 짧으면 반년 길면 1년 정도 야당의 사생결단이 예상된다. 당장 정국 향방을 가를 중요 변수는 한 대표의 정치력이다. 탄핵소추 거부에 따른 여론 역풍이 만만찮다. 10대·20대·30대 젊은층이 탄핵 집회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보수 정당으로서는 특히 뼈아픈 일이다. 계엄 사태 직전까지 민주당의 장외 집회는 시들시들해지고 있었다. 시민 동참이 저조하자 민주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옷을 입지 못하게 하는 블랙코미디까지 벌일 정도였다.

이렇게 수세에 몰려 있던 이 대표는 ‘아닌 밤중에 횡재’를 했다. 윤 대통령은 왜 이런 바보 같은 정치적 자폭을 저질렀을까. 대통령 주변 인사들 설명을 종합하면 극단적 유튜버와 김건희 여사 특검법 문제가 도화선이었던 것 같다. 계엄 담화와 포고령, 계엄군 움직임을 보면 그런 유튜버 주장과 판박이다. 윤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친 유튜버는 S, K, L, K, J 등 5명 정도라고 한다. 김 여사 명품 가방 문제와 특검 논란이 본격화한 지난해 말부터 대통령실 참모들에게서 ‘대통령이 유튜브 못 보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엔 ‘쌍무지개 소멸’ 같은 주술적 예언 때문에 불안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함께 합당한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명태균 씨와 관련된 여러 의혹도, 김 여사 또는 가까운 친인척이 등장하는 온갖 녹취록 내용도 한결같이 심상치 않다. 윤 대통령은 헌법상 특권에 숨지 말고 적극적 자발적으로 수사에 응해야 한다. 압수수색도 출두 요구도 회피해선 안 된다.

급류를 건널 때는 발밑에 집중해 한발 한발 내디디고, 먼 산을 바라보며 방향감각을 유지해야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처지다. 계엄 사태 격랑을 슬기롭게 넘을 집단 지성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현직 대통령에게도 성역 없이 엄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와 재판 역시 마찬가지다. 판검사 겁박과 탄핵소추, 국회와 정당을 사법리스크 방탄에 동원하는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일, 그것이 윤 대통령의 마지막 애국일지 모른다. 윤석열도 이재명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한다면, 국가 차원에선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에 주는 교훈도 명확하다. 현재 무한 정쟁의 근원은 거대 양당 체제가 고착화하면서 더욱 악화해온 ‘제로섬 정치’에 있다. 이를 개선할 정치적 각성과 제도적 개혁이 절실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조기 대선 필패’라는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나 사즉생 각오로 먼 산을 보는 일도 중요하다.

이용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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