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는 집단 트라우마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민지, 분단, 6·25전쟁, 군부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세월호, 핼러윈 참사까지 한국인은 충격적 사건들을 집단적으로 거치며 큰 상처를 입어왔다. 상처와 흔적은 대를 이어 전해져 한국인과 개개인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 어쩌면 우리 현대사는 이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 꽤 성과를 거뒀는데 12·3 비상계엄이 이 위에 핵폭탄급 트라우마를 던졌다.
특히, 선진국에서 태어나 영화에서나 볼 일을 직접 겪은 MZ세대에 선명한 상처를 남겼다. 국민을 지켜야 할 ‘상징적 국가’가 국민에게 총을 겨눴다는 사실. 발터 베냐민은 트라우마와 관련해 ‘과거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했던 순간, 찰나의 기억을 잡아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완전무장한 군이 총을 들이대고, 국회 유리창을 깨는 순간, 그 장면의 기억은 마음 깊이 각인돼 자신도 모르게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상처를 뜻하는 그리스어 트라우마트(traumat)에서 나온 트라우마는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 혹은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을 말한다. 삶이 산산조각 난 느낌, 세상은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감각, 말 그대로 터널 끝에 빛이 없는 것 같은 마음이다. 원래 의학에서 신체적 상처를 뜻했으나 19세기 이후 정신적 상처로도 쓰였다. 보다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 2003년 이라크전 참전 군인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면서부터였다.
미국 임상심리학자 에디스 시로는 책 ‘트라우마, 극복의 심리학’(히포크라테스)에서 트라우마에 영향받은 사람들이 보이는 세 가지 반응 방식을 이렇게 정리했다. 트라우마에 갇힌 사람, 회복해 예전 삶으로 돌아간 사람, 앞으로 도약한 사람. 도약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오히려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이르고 공동체와 더 깊게 연결되면서 살아남는 것 이상의 외상후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이룬다고 했다. 실제로 집단 트라우마는 공감과 상호 지지 위에 연대와 결속력을 강화해 역경을 이겨내는 동력이 된다고 한다. 집단 트라우마의 유토피아적 효과다. 우리의 선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유토피아적 도약이어야 한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