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면서 히로시마에 들렀다가 왔다. 오랜만에 방문한 평화기념공원에는 초등학생이 많았다. 교사와 함께 온 학생들은 수천수만 마리 종이학이 놓여 있는 공간에서 애도와 함께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시련을 넘어’ ‘세계의 벗’들과 함께 ‘화합’하며 ‘평화의 종’을 울리자고. 이 노래는 1947년 8월 6일에 열린 평화기념제에서 처음 불린 이후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그리고 기념관에는 외국인이 아주 많았다. 올해 원폭 피해자 단체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오래전에 강의에서 이노우에 히사시(井上ひさし)의 ‘아버지와 살면’이라는 작품을 학생들과 읽은 적이 있다. 원어 텍스트의 히로시마 사투리를 다들 처음엔 어려워했지만, 학기 말엔 두 사람의 주인공에게 감정을 듬뿍 실어가며 모두 함께 소리 내어 읽게 됐다.
주인공은 도서관 사서(司書) 일을 하는 딸과 그 아버지다. 어느 날, 도서관을 방문한 젊은 대학교원을 딸은 좋아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 마음을 억누르려 한다. 그런 딸을 아버지는 답답해하면서 ‘사랑의 응원대장’ 역할에 나선다. “두근거리는 네 가슴이 나의 심장을 만들었고, 뜨거운 네 한숨이 나의 몸통을 만들었고, 보일 듯 말 듯 가냘픈 너의 바람이 나의 팔다리를 만들었단다”라면서. 그는 피폭돼 죽은 아버지의 혼백이었던 것.
그리고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 무너진 지붕에 깔린 아버지를 미처 구하지 못하고 딸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딸은 아버지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행복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새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려 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간절함으로 다시 나타난 아버지는 그런 딸의 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내면서, 딸이 죄의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딸도 종국에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고 찾아온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학생들은 언어뿐 아니라 내용도 깊이 이해했다. 긍정적인 감상을 말했던 건 특히 여학생들이었고, “히로시마 비극을 통한 반전 작품”이라며 작가의 의도를 명확히 읽어낸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피해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라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학생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자 부녀지간 사랑이나 반전을 읽어냈던 학생들이 먼저 반론을 폈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미 일본의 가해 사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피해 체험인 건 사실 아닌가” “미국의 인종차별도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관계없지 않다더라” “원폭 투하를 하지 않았어도 승전할 수 있었다더라”라고.
이런 식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지식이나 가치관 이전에 세상에 대한 ‘태도’다.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는 태도. 눈앞에 놓인 텍스트가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며 읽는, 작가에 대한 존중. 그러니까, 눈앞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해 다 안 것처럼 평가(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다 모르는 ‘우주’로 세상을 대하는 존중의 ‘태도’. “고추장 속 단맛”은 가만히 음미해야 느낄 수 있다고 했던, 나의 일본인 지인이 지녔던 그런 ‘태도’. 대상을 제대로 알고 또 느껴 보려는 지적/(감성적) 자세가 없는 곳에서는 고추장은 그저 매운 것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지성과 감각을 동원해 단맛을 감지해 내는 혀와, 매운맛만을 느끼고 거부하는 혀 중 더 행복한 혀는 물론 전자다.
개인이든 국가든 대상이 갖는 복잡한 결을 보는 일은 시간과 인내심을 요한다. 그런 시간을 생략한 태만이 만드는 구호는 대상을 단순화해 납작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결이 보이기 시작한 후에도 구호가 만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못 본 척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침략자 속성을 타고난 나라” “자기네가 저지른 죄를 부정하는 것은 기회만 닿으면 또다시 그런 짓을 하겠다는 의사표시”(‘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식의 1980년대 주장이 30년 이상 지나도록 우리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것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일본편을 삭제한 개정판이 나와도, 그런 변화가 공식적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한 대상을 과거 인식에 가둬 두는 태만에 더해, ‘재인식’ 사실을 공식적으로는 침묵하는 기만과, 가해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된다고 여기는 오만만이 횡행하는 사회에 머물러 있게 될 뿐이다. 오늘의 정치인이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침략’이라는 30년 전 인식을 주장하는 건 우리가 지금 어떤 공간에 있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던 악의적인 유언비어의 결과를, 우리만큼은 제대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처참한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니까. 무엇보다, 비판과 인식에 힘이 있으려면 정확해야 한다. 이중적 일본론으로 유명한 ‘국화와 칼’의 저자는 일본에 가 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내년은 한일협정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당했으니 갚아주자는 식의 처벌 욕망과, 우리 피해가 더 크니 가해자의 피해는 말하지 말라는 식의 피해자 의식을, 60년의 세월은 넘어서게 해 줄까. 물론 그건 우리 모두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재일교포들의 참정권 획득도 그 저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