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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문10답 - 비혼출산의 현실과 숙제

지난해 비혼 출생아 1만900명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인 4.7%
해마다 비혼 출산 숫자 늘지만
국민 절반 이상은 여전히 반대
한부모 지원 시스템 체계화 필요

佛, 동성도 ‘시민적 결합’ 인정
스웨덴은 ‘파트너등록제’ 운영
결혼에 준하는 권리·혜택 보장


배우 정우성과 모델 문가비의 혼외자 출산이 촉발한 ‘비혼출산’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비혼출산을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완화할 대안의 하나로 인식하고 등록동거혼제나 동반가정등록제 등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섰다. 앞서 지난 2021년에는 방송인 사유리가 결혼 대신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면서 정자은행 도입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중심 가족제도가 여전히 확고한 한국에서 비혼출산 장려는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크다. 한국 사회가 전통적 가족구조를 넘어 ‘정상가족’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까. 비혼출산은 무엇이고 관련 법·제도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본다.

1. 비혼출산이란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을 비혼(非婚)출산이라고 한다. 미혼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면 비혼은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는 의미로 개인의 선택권·주체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혼인 외 출산을 ‘미혼출산’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결혼에 대해 개인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가치관이 변화하며 비혼출산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고 있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거나 의도적 자연수정을 통한 임신 등이 비혼출산의 대표사례로 꼽히는데 출산 당사자의 비혼 의지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2. 한국의 비혼 출생아 비율

한국의 비혼 출생아 비율은 3년 연속 증가세다.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는 전체 출생아의 4.7%인 1만900명으로,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태어난 신생아 20명 중 1명이 혼인 외 출생아인 셈이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21년 7700명에서 2022년 9800명 등으로 3년 연속 급증세를 이어갔다. 다만 해당 수치에는 비혼 출생뿐 아니라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등 결혼관계를 유지하며 출산한 예도 포함된다. 전체 출생아 중 혼인 외 출생아 비중 역시 2017년 1.9%, 2020년 2.5%, 2022년 3.9%, 2023년 4.7%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3. 비혼출산 관련 여론 및 정부 지원

비혼출산에 대한 지지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4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올해 조사에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한 국민은 37.2%로 2012년 22.4% 이후 계속 증가했다. 특히 청년세대의 인식 변화가 뚜렷한 상황이다. 11월 여론조사에서 20∼29세 중 42.8%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했다. 10년 전 30.3%만이 비혼출산에 긍정적 답변을 한 것과 비교하면 12.5%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다. 또 지난 11월 28일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비혼 출생아를 포함한) 모든 생명이 차별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살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양육비 일부를 대신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 환수하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시행하는 등 한부모 가정 지원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4. 비혼출산 지원 위한 국회 입법 논의

등록동거혼이나 생활동반자법 등 비혼출산 지원 가족제도 도입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 역시 활발하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1월 30일 “비혼 출생아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등록동거혼제를 인정해야 한다”며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일 “갈수록 많아질 이 땅의 ‘문가비 모자’를 위한 연대관계등록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등록동거혼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동거신고만 하면 기존 혼인가족에 준하는 세금·복지 혜택 등을 제공하는 제도다. 연대관계등록제는 결혼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출산한 동거인에게 법적으로 부모 지위를 인정해 주는 제도다. 비혼출산 관련 대책 마련에 나선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다. 경북도는 2일 동거가정을 위한 동반가정등록제 도입 추진 등을 정부에 건의하고 국회 입법을 요청했다.



5. 정자은행 등 통한 자발적 비혼 출산

방송인 사유리가 2021년 해외 정자은행을 통해 비혼출산을 하면서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출산에 관한 관심도 뜨겁다. 한국에서 비혼여성의 자발적 비혼출산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산부인과 등에서는 윤리지침을 내세워 비혼여성 대상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을 거부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 상 비혼여성은 인공·체외수정 같은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학회가 시술 대상을 모자보건법상 난임을 겪는 법률혼·사실혼 부부로 한정해 실질적으로 비혼여성이 국내에서 의료시술을 통해 임신하기는 어렵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대한산부인과학회 윤리지침이 자의적이라며 지침 개정을 권고했으나 학회는 사회적 합의와 법률 정비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워 거부했다.

6. 비혼출산 관련 국내 법률·제도

혼인신고가 없는 남녀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를 법률용어로 ‘혼외자(혼인 외 출생자)’라고 부른다. 혼외자에게 법률상 권리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생부 또는 생모가 법적으로 자녀라고 인정하는 인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인지는 인지권자의 자유의사에 따르는 ‘임의인지’와 재판으로 이뤄지는 ‘강제인지’로 나뉜다. 생부나 생모가 임의인지를 하지 않은 경우 혼외자가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인지청구 소송에서는 보통 원고가 유전자검사를 신청하고 검사결과를 토대로 법원이 판결을 내린다. 인지청구가 인용되면 혼외자에 대한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고, 반대로 생부는 면접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면접교섭권은 부모·자녀의 유대관계 등 자녀 복리의 관점에서 인정되는 권리다.

7. 비혼출산 관련 주요 판례

비혼 부모 간에도 자녀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양육비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례가 나오지만 실질적인 양육비 지급을 위한 제도는 미비하다. 대법원은 2017년 판례에서 “혼외자에게도 부모는 양육 책임을 동일하게 부담하며, 친권 및 양육권은 자녀의 복리를 우선으로 판단한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13년 “혼외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헌법 제11조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혼외자의 권리 보호를 명확히 했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과 가사소송법에 따르면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생부나 생모는 자녀를 직접 양육하는 측에 합의 또는 법원판결에 따라 정해진 양육비를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비혼출산 부모의 92%는 상대방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해 양육비 지급 이행 행정조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8. 종교계 등의 비혼출산 반대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혼인관계에 따른 출산이 대부분인 만큼 비혼출산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반발도 크다. 특히 종교계는 등록동거혼제 도입이 가족 해체, 동성혼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저출생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역시 아직 등록동거혼 등 다양한 가족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저고위 관계자는 3일 제6차 인구비상대책회의 사전브리핑에서 나온 등록동거혼 관련 질의에 “구체적으로 검토 진행 중인 사항은 없다”며 “포용적으로 계속 논의가 진행된다면 출산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정도의 원론적 생각”이라고 답했다.

9. OECD 회원국 비혼출산 현황

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 비혼 출산율은 42%다. 신생아 5명 중 2명꼴로 결혼하지 않은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 중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 아이슬란드, 프랑스, 불가리아, 노르웨이,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스웨덴, 덴마크,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벨기에 등 중남미·유럽 14개국의 경우 비혼 출산율이 50%를 넘었다. 가장 높은 비혼출산율을 보인 국가는 칠레(75%)였으며 코스타리카(73%), 멕시코(70%) 등도 비혼출산율이 70%를 넘었다. 반면 튀르키예와 일본, 한국 등은 비혼출산율이 2%대였다. OECD는 모든 회원국의 비혼 출산율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짚었다. OECD 평균 비혼 출산율은 1970년 7%였으나 1995년 23%로 올랐고, 2020년 42%를 기록했다.

10. 대안적 가족제도 해외사례

세계 각국은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낳은 이들을 위해 등록동거혼 같은 대안적 가족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에는 ‘시민연대계약(PACS)’이라는 이름의 동거제도가 있다. 결혼하지 않은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 간 ‘시민적 결합’을 인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동시에 출산·육아 등도 지원한다. PACS를 원하는 두 성인은 법원에서 이를 신고해야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결혼식 같은 예식을 올릴 수도 있다. 2022년 기준 PACS를 활용한 커플만 20만 쌍을 넘어섰다. 스웨덴은 스웨덴어로 동거를 의미하는 ‘삼만보엔데(Sammanboende)’의 줄임말인 ‘삼보’라고 불리는 파트너등록제가 있다. PACS와 마찬가지로 두 성인 간 비혼 동거를 인정하는 제도로, 결혼과 유사하게 동반자로서의 권리·혜택을 보장받는다.

김선영·박상훈 기자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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