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 서는 사람, 닿지 않을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서는 사람, 그러나 돌아보지는 말라는 사람, 걸으면 같이 걷고 서면 다시 등 뒤에 붙는 사람, 떠난 사람을 붙잡지 못한 사람, 가다 서서 가지 못해 울먹이던 그 사람을 영영 떠나보낸 사람, 그 사람이 지금 내 뒤에 서 있다’
- 최하연 ‘그 사람’(시집 ‘보헤미아 유리’)
동생은 부쩍 반항심이 커진 아들 문제로 속상하다. 별일 아니라고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고 의지를 곧추세우는 중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어른이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위안이 될 리 없다. 그럴 땐 입을 꾹 닫고 들어주는 게 최선이다.
사람이 제일 어렵다. 제 자식 속도 알 수 없으니 더 덧붙일 게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 건너편 사람의 선의를 믿는다. 여기서 선의란, 최소한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길을 걷던 낯선 이가 느닷없이 해코지를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보도 위로 차량을 들이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국가 지도자가 비상식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런 믿음에 균열이 생기면 그 틈을 혼란과 불안이 잠식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다. 고립되어 외톨이가 된다. 병이 든다. 어제 한 친구는 평소 복용하는 우울증약을 처방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대기실 가득한 사람들에 놀라고 말았다고 한다. 믿음을 배신당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분명 늘어났다고, 그래서 한층 더 우울해지고 말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닐 수 있겠는가. 계엄령이 선포되던 그날 밤, 두통과 현기증이 일어나 역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사람을 사람으로부터 회복시켜야 한다. 아는데 방법이 없다. 입을 꾹 닫고 들어주기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또 자기 자신을 말해야 하는 시간이지 않은가. 서로의 선의에 대한 믿음의 세계를 다시 구축해내야 하는 방법에 대해 모두의 머리를 맞대야 할 때이지 않은가.
시인·서점지기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