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 열흘 가깝지만, 다수 국민은 윤 대통령의 의도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리 야당이 무정부 상태로 만들 것처럼 예산을 삭감하고 장관들을 탄핵으로 몰아넣었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계엄령 선포와 군대를 동원한 국회 점령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국회의원선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의심은 또 무엇인가. 모든 게 비상식적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은 정신 상태까지 의심받는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뇌 질환으로 국군병원 진료를 받았다는 얘기가 ‘지라시’로 돌았다. 이제 탄핵이든, 하야든, 구속이든 윤 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 돌아보면 지난 2년 반의 국정 운영 기간 윤 대통령은 ‘불쑥’ 행보의 연속이었다. 섬세하게 연구해서 실행해도 쉽지 않은 난제를 즉흥적으로 공론화하고, 여론에서 지지한다 싶으면 ‘고’하고 아니면 ‘빽’하는, 이른바 ‘떴다방’ 정책들을 쏟아냈다.
보수주의의 시조로 불리는 18세기 영국 정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는 신중과 점진, 전통 등의 단어로 압축된다.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지도자라면 헌법·법질서 등을 중시하고 모든 정책과 결단에서 충분히 숙고한 뒤에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버크는 영국의 헌정 체제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국 사회를 강하게 만드는 개혁은 지지하면서도 정치 발전의 연속성을 깨고 완전히 새 옷으로 갈아입으려는 개혁은 반대했다. 계엄령 자체가 버크의 사상과 맞지 않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런 점에서 보수에서 한참 멀다. 이제 보수 진영조차 윤 대통령을 부끄러워한다. 지난해 한 인터넷 매체는 윤 대통령이 2021년 국민의힘 입당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민주당보다 더 싫어한다. 국민의힘이 당이 좋아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정권교체 플랫폼으로 써먹어야 한다”고 보수를 이용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녹음 파일을 공개해 보수 지지층을 경악하게 했다. 그의 배우자는 “우리는 비위만 맞출 뿐 보수가 아니다. 남편은 노무현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한 녹취록도 보도돼 보수 진영의 비위를 긁었다. 돌아보면 국민의힘도 이들을 정권교체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런데 그들이 계엄을 통해 급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혁명을 꿈꾸고, 명품 가방이나 받는 싸구려 짓을 했다면 그 도구를 버리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보수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탄핵 국면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명해진다. 지금 보수당의 모습은 품격도, 책임감도 없다. 현재 우리 경제는 도대체 어디로 추락할지 모를 위기감이 팽배하다. 말끝마다 경제를 외치던 보수당이 증시가 흔들리고 환율이 출렁이는 이 위기 국면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이때 북한이 도발이라도 하면 낭패다. 이번 주말 국회는 윤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 표결에 들어간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당당히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투표권을 행사하시라.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상관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분열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여라.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 대한 공포는 그다음 문제다. 그래야 보수당이 5년 뒤라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